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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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소도시에서 공고를 졸업하고 한적한 시내 외곽에 세워진 공장에서 일을 한 지 3년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현은 고교 2년 후배인 동현이 몸살이 걸려 야간근무를 설 수 없어 대신 서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체인에 껴서 마치 골무처럼 살점이 모두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한 순간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꽝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속에 고통은 느껴질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뼈를 생전 처음 보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현아!”
멍하니 떨어져 나간 살점을 바라보며 떨고 있는 현을 바라본 수혁이 형이 소리를 질렀다. 기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 꺼!”
수혁이 형이 부릅뜬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를 했는지 현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수혁이 형은 떨어져 나간 현의 엄지손가락 살점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읍내병원으로 현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큰 병원까지 현을 챙겼다. 큰 병원에서 현은 자신의 오른쪽 둘째 발가락 살점을 조금 떼어 엄지손가락에 이식했다.
그 뭉개진 손가락으로 현은 지금 넥타이를 만지작거린다.
병원에 입원 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뒤였다. 그날은 무료하기 짝이 없는 토요일 오후였다. 야구경기를 재미없게 보고 있던 중 수혁이 형과 동현이 병문안을 왔다. 그리고 그 뒤로 낯선 여인이 따라 들어왔다.
그 여인은 하늘색 남방에 회색 줄무늬가 있는 흰색 카디건을 걸치고 색이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수줍게 인사를 하던 여인. 그렇게 그날 현은 선영을 처음 만났다.
선영은 미소 지을 때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가 예뻤다. 수혁이 형은 자신의 여자 친구라며 현에게 선영을 소개했다. 이웃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다시 수줍은 듯 해맑게 웃는 선영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현에게 말하지 못할 고통이 될 것이라는 걸 그 순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98일의 긴 입원생활을 마친 후 넷은 자주 함께 어울렸다. 가까운 산으로 등산을 다녀오기도 하고 주말이면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 뒤 수혁이 형의 자취방에서 넷만의 파티를 하곤 했다. 반복되는 지루하고 고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으로 위로를 삼던 그 시간들이 현에게 있어서는 가장 눈부시던 시절이었다.
수혁이 형과 선영의 결혼식 날, 눈물을 흘리던 선영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은 고통을 받았던 그 순간까지도. 그 고통 앞에서도 현은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면서 자신 또한 행복한 놈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 이렇게 모두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흩어짐의 원인이 우리들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현은 너무 서글펐다. 분명 실체가 존재하지만 그 실체에는 다가설 수 없는 이 외부와의 싸움에 현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심장은 검게 타들어 가기만 했다.
수혁이 형과 선영 사이에 예나가 태어나고 예나의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외국 자본에 매각 됐던 회사는 느닷없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인력감축을 해야 한다는 선언을 일방적으로 해버렸다. 회사는 공장 근로 인원의 절반 정도를 희망 퇴직시키려 했다. 퇴직자 명단이 발표된다는 유언비어가 횡행했다. ‘산 자’와 ‘죽은 자’라는 잔인한 분리 속에 어차피 쫓겨날 거 희망퇴직을 해 두 달 치의 임금이라도 받고 나가라는 문자메시지가 돌기 시작했다. 노조도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 모여 집회를 할 때마다 수혁이 형은 단상에 올라 당당하게 외쳤다.
“동지들, 우리는 결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뼈 빠지게 일하고, 밤에도 나오라면 군말 없이 나와서 일하고, 아파도 참고 일하고……… 그렇게 미련하게 일만 하면서 회사 발전을 위해 젊음을 바친 우리들이 도대체 무슨 죄란 말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들이 죄인처럼 눈치를 봐야 합니까!”
수혁이 형의 사자후를 기점으로 우리들의 헤어짐은 시작됐다. 수혁이 형과 현은 당당하게 공장 안의 고립을 선택했고, 동현은 결국 공장 밖을 선택했다. 선영은 이런 우리들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공장 주변을 맴돌았다. 이후로 넷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고립된 공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마치 산불이라도 진화하는 듯 경찰 헬기는 저공비행을 하며 최루액이 섞인 물 폭탄을 무자비하게 쏟아부었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는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 깡패들이 대형 새총으로 볼트와 너트를 마구 쏘아댔다. 전투경찰들은 한밤중에도 방패를 땅바닥에 사정없이 내리찍으며 소음을 만들어 잠조차 방해했다.
사측이 동원한, 이른바 정리해고 명단에서 제외된 ‘산 자’들과 용역깡패들이 한밤중에도 ‘오 필승 코리아’를 크게 틀어놓으며 새총으로 볼트와 너트를 쏘아대던 날들이 며칠 째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 틈에서 동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색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수혁이 형은 동현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동현이를 본 수혁이 형은 한동안 움직이질 않았다. 현 또한 둘의 모습을 번갈아 보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둘의 모습은 말라죽어버린 나무 같았다. 그 나무를 과녁 삼아 볼트가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기나긴 밤을 버티고 찾아온 새벽의 끝자락, 아침이 밝아오기 전 유일하게 조우하게 되는 짧은 정적 속에서 수혁이 형의 눈빛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형은 마치 고해성사를 보듯 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아…… 내가 미안하다.”
현 또한 동현과 마찬가지로 ‘산 자’였다. 하지만 현은 차마 수혁이 형을 남겨두고 공장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선영이의 눈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영이에게 수혁이 형만 남겨놓고 살겠다고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개새끼들. 이 더러운 배신자 새끼들.”
현은 자기도 모르게 넥타이를 움켜쥔 손을 바라보며 욕지기를 내뱉는다. 선영 이후로 더는 매고 싶지 않은 넥타이였다.
두 달 전, 수혁이 형은 선영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우울증 치료제를 부여잡고 방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을 했었다. 그날 현도 허름한 자취방에 돌아와 벽에 주먹질을 하며 울부짖던 기억이, 주먹에 전해지던 통증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현은 선영이 뺑소니 사고를 당해서 땅에 묻힐 때까지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7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던, 그래서 모두 말라죽어버릴 것 같던 고립을 견디고 나왔을 때 현과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욱 처절한 냉대였다. 그것은 공장 안에서 뜻을 같이한 사람들에게 가했던 집단의 고립이 아니라 우리들을 파편화시켜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고사시키는 형벌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닭장차에 오를 때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으며 어떻게든 희망만은 놓지 말자고 말했었지만 이미 그 희망이란, 전쟁을 치르면서 모두 소진돼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이력서에 기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이 아니었다.
현은 갈수록 점점 더 외로워져 갔다. 외로움 보다 무서운 것은 막막함이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약속했던 복직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무참하게 받아들인 순간부터 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어디를 가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심장 때문에 현은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어버렸다. 도저히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한없이 무섭기만 했다. 그리고 온몸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웠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 것 같았다. 수치스러웠다. 밥을 먹다가도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잠을 자다가도 옆에서 누군가가 비웃듯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항상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니 돈이 떨어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자리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용직 막일과 대리운전뿐이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술에 취한 뒷좌석의 손님들을 바라볼 때마다 현은 자기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차를 전봇대에 박아버리고 손님과 함께 죽고 싶다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가슴을 덮쳤다. ‘우리들이 그렇게 간절히 호소할 때 너희들은 오늘처럼 술이나 처먹으며 외면을 했다’는 망상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욕이 입에서 튀어나와 술 취한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인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깊은 절망이 현을 고통스럽게 괴롭혔다.
현은 일그러진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꽉 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눈을 뜬 현은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여니 옆 건물의 콘크리트 벽이 모든 것을 가로막고 있다. 콘크리트 벽에는 지저분한 얼룩들이 독특한 무늬로 새겨져 있다. 그건 마치 떠나간 동료들이 마지막에 절규하면서 내뱉은 핏자국 같다. 벽과 벽 사이를 떠도는 12월의 차디찬 새벽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현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막막하기만 한 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벽에 가려진 세상은 아직 조용히 잠들어 있다. 며칠이 지나면 크리스마스고 또 며칠이 지나면 새해가 밝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한 시간 정도 뒤면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그리고 수혁이 형은 영원히 땅에 묻힐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은 아침을 다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렵다.
현은 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제 자신도 다시 도저히 저 길고도 긴 겨울과 겨울을 가득 채울 아침을, 그리고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내년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이젠 정말 의지할 곳이 없다고.
그것은 두려움보다는 일종의 허무에 가까웠다. 존재의 허무함. 두려움도 희망도 추억도 모두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현은 다시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계속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눈을 감고 현은 벽 넘어 빼곡히 박혀있는 집들마다 찾아오는 아침을 어떻게 맞을지 상상해 본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직장에 가는 사람들, 달콤한 잠에서 깨기 싫어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사람들, 서로 안은 몸을 떨어뜨리기 싫어하는 사람들, 아이들, 어린이들, 중년들, 노인들…… 그들은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 어제와 같은 오늘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아침에 현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현은 다시 소름이 돋는다. 몸이 약간 떨리고 온몸에 털이 주뼛 선다. 현은 눈을 뜨고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언제 다시 나타났는지 수혁이 형이 화장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수혁이 형의 말이 떠오른다. 외롭다는 말. 왜 자신에게 그 말을 하며 흐느꼈는지 현은 이 순간 대충 짐작을 한다. 수혁이 형을 보자 이 여명에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순간 뚜렷해진다.
현을 응시하는 수혁의 형의 눈에 홀린 듯 발걸음은 천천히 화장실을 향한다. 발걸음은 수혁이 형 바로 앞에 닿지만 현은 수혁이 형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대신 형을 지나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현의 손에는 넥타이가 들려있다.
더러운 욕실이다. 타월마다 물 떼가 끼어있고 거울도 깨끗하지 못하다. 현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엄지손가락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그 안에 담겨있다.
현은 욕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샤워기 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현은 올가미 같은 넥타이를 조심스레 묶는다. 그리고 원 안으로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는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만 33년 4개월의 시간을 잠시 생각해 본다. 몇몇의 얼굴들과 장소들이 두서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현의 눈앞에는 방금 전에 바라본 그 콘크리트 벽이 보인다. 자신의 생은 결국 그 콘크리트 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은 쓴웃음을 짓는다.
현은 화장실에 들어올 때부터 요동치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수혁이 형과 눈이 마주친다. 현은 잠시 수혁이 형의 눈을 바라본 뒤 천천히 눈을 감는다. 떨리는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가 양 손바닥을 맞잡고 깍지를 낀다.
불안한 호흡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다. 결국 가쁜 숨을 쉬며 물속으로 들어가듯 서서히 지탱하고 서 있던 다리를 구부리기 시작한다. 처음 찾아오는 통증이 낯설지만 현은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점점 목의 통증과 함께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현은 좀 더 용기를 내기로 한다. 자신의 의식이 느껴지는 동안 최대한 몸을 앞 쪽으로 밀어 힘을 준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오금이 저리기 시작한다. 현은 아직 의식이 있는 만큼 조금 더 힘을 준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왠지 모르게 흥분이 되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사이 다시 스멀스멀 그 소리가 현의 영혼을 감싸기 시작한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오-레, 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