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1년 9월 3일 금요일, 맑음.

by 고귀한 먼지
행복이란 결국 ‘편안’의 횟수와 지속시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2021년 9월 3일 금요일, 맑음.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라는 드라마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로 기억한다. 드라마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편안’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이 잠시 머물렀던 하루였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고향에 내려와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의 불안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까 생각하다 ‘편안’이란 단어까지 이르렀다.


편안[便安] : 몸이나 마음이 걱정 없이 편하고 좋음.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이 같은 상태에 이를까?

모르겠다. 횟수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 번 이르렀을 때 얼마냐 지속되느냐로 따져야 하지 않을까?

암튼, 몸과 마음이 둘 다 편하고 좋기는 정말 쉽지 않다. 올해 내 화두 중 하나는 ‘행복’인데 행복이란 결국 ‘편안’의 횟수와 지속시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생각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한 번 사는 인생, 행복이 ‘편안’의 횟수와 지속시간에 달렸다면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음... 여전히 어렵군. 그냥, 오늘은 행복했던 하루였다고 말하리라.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 먹으며, 이 험한 세상에 내 몸을 자유롭게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걱정 없이 편하고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 행복한 상태라는 걸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어제 받은 서울영상위원회 ‘2021년 시나리오 모니터링단 활동 증명서’는 올해 내 삶을 증명하는 소중한 성과 중 하나다.


증명서.png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동안 활동하며 총 열두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읽고 평가서를 제출했다. 한 편당 분량이 A4지 120~140장 분량이어서 제대로 정독하려면 최소 두, 세 시간은 걸렸다. 총평을 얘기하자면 상업 영화를 목표로 쓴 시나리오다 보니 기시감이 많이 들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장르도 범죄 수사, 거기에 코믹을 결합한 장르가 대부분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사극이 많았다.

물론, 여전히 생각나는 놀라운 작품이 몇 편 있었다. 나는 열두 편 중에 세 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두 편은 사극이고, 한 편은 특수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였다.

아직 내가 남의 작품을 평가할 실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한편마다 최선을 다해 평가를 진행했다. 그 과정 자체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공부가 됐다.


4개월 남짓 남은 2021년. 남은 기간의 내 목표도 지금 쓰다 만 장편 시나리오 두 편을 완성하는 건데, 모니터링 활동을 하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꼭 4개월 동안 노력해서 내 작품 두 편을 완성할 거다.


이제 가을이라고 말해도 되겠지? 낮에는 햇볕이 조금 따가웠지만, 가을을 품은 공기를 어찌할 순 없었다. 저녁을 먹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걷기 운동을 했다. 잠깐 먹구름이 몰려와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호암지 공원 앞에서 멋진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또한 내 기록이며 내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뿌듯했다.


다시 집에 돌아와 자기 전에 이 글을 쓰면서 ‘편안’에 대해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내게 들리는 여러 목소리에 지칠 때마다 이 단어를 생각해야겠다.


어쨌든 태어났고, 의미가 있든 없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면, 일단 존재가 편안을 추구하는 게 나쁜 건 아니겠지.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공동체를 위해 조금이나마 헌신할 수 있다면, 나중에 눈을 감을 때 후회라는 감정이 조금은 덜 들지 않을까?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렇다.

암튼, 오늘 하루 잘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녁을 먹고 슬슬 걷다가 들른 충주 호암지공원. 해가 지고 있는 가운데 마침 먹구름이 몰아쳐 뭔가 그럴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때마침 분수도 나오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