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1년 8월 22일 일요일.

by 고귀한 먼지
후회와 자책과 비난과 좌절의 감정을 털어놓는 공간이 아니라, 그럼에도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이 여백은 활용돼야 한다.


주말을 잘 보냈는지 모르겠다.

무난하게 보낸 것 같은데 그걸 잘 보냈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긴, 뭐 꼭 알 필요 있나? 벌써 주말은 지났고 이제 다시 한 주가 시작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고, 또 생각하는 내가 아직 존재하는 사실만으로도 난 지나간 주말을 잘 보낸 거다. 후회와 자책과 비난과 좌절의 감정을 털어놓는 공간이 아니라, 그럼에도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이 여백은 활용돼야 한다. 일주일 내내 안타깝고, 화나고, 무력감에 힘이 빠지는 소식들을 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다짐을 하고 진심으로 실천해야 한다. 삶이라는 건 그런 거다.


결국, 주말에 계획했던 일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글을 쓰지 못했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주말에는 영화감상과 독서에 집중했다. 하루에 만 보를 채우는 걷기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영화는 <작가 미상>, <벨벳 골드마인>, <매니페스토>를 봤고,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주말 동안 다 읽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분명 내 감성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믿는다. 내가 앞으로 글을 쓸 때 어떻게 도움을 줄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탄과 전율, 그리고 희열과 충격 등은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시간을 내 이 작품들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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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오늘이 의미 있었던 건 오랜만에 하늘공원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거의 2년 만에 하늘공원 계단을 올라 탁 트인 한강의 경치를 구경하고 돌아왔다. 비구름이 다 가시지 않아 날이 흐렸지만 그대로인 모습에 위안을 얻었다.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검은 고양이도 만나고, 땀 흘리며 운동도 하고, 서울에서 작은 개울의 정겨운 물소리도 듣고 더할 나위 없었다. 항상 혼자 걷지만, 이곳저곳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사실 외로움을 참을 수만 있다면 혼자일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법인데 요즘 그걸 실감한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내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갔던 두 시간이 오늘 하루의 품격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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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산책도 그렇고 이 모든 게 결국 자양분이겠지. 다시 시작될 한 주를 무난하게 보낼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줄 자양분. 비록 글을 쓰진 못했지만, 공부를 하진 못했지만 이만큼의 자양분을 쌓을 수 있었던 주말을 잘 보냈다고 인정하자.


흔한 말이지만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거다.

이번 주말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보냈으니 내일부터 시작될 한 주는 이웃에게도 뭔가 힘을 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자. 직접적으로 봉사활동을 하진 않더라도, 결국에는 기여를 했다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살자.


내가 이웃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

영화는 혼자 할 수 없으니 일단 이야기를 열심히 만들자.

그러니까,

빙빙 돌려 말했지만 결국 글을 쓰고, 공부를 하자는 말이다.

주말에 하지 못했던 그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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