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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n 20. 2020

오늘의 요리, 간장 비빔밥

오늘의 요리, 간장 계란밥

오늘의 요리는 간장 계란밥이다. 냉장고가 비어 있거나 딱히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 배가 출출한데 유난히 밥이 먹고 싶을 때, 간편한 계란밥 한 그릇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반주로 소주까지 한잔 곁들이고 싶다고? 그렇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밥은 최고의 소주 안주다. 냉장고 저 깊은 곳에 김치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쌀. 이상적인 밥은 쌀로만 지어진 것이다. 얼치기 요리사들이 현미, 밀, 보리와 같은 감상적이고 끈적거리는 재료를 첨가한다. 진짜 셰프의 밥솥에는 쌀 이외의 것을 위한 자리는 없다.

가스불을 켠다. 쌀과 물과 불은 서로 교감하고 조응하며 서서히 밥이라는 구체적인 음식이 된다. 예전 어떤 시인이 명상만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신박한 재주를 보여준 적이 있으나, 그것을 직접 먹어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관념이 아닌 진짜 요리를 하는 데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밥을 하는 것은 결국 시간을 품고 천천히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음은 계란 프라이. 팬에 얼마만큼의 기름을 두를 것인가. 어느 정도로 계란을 익힐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계란 프라이가 실현된다는 보장도 없다. ‘써니 사이드 업‘ 이건, 반숙이건, 완숙이건 맛의 대세에 큰 지장이 없다. 계란 프라이를 하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큰 접시에 밥을 덜어 그 위에 방금 준비한 계란 프라이를 얹는다. 이후 적당량의 간장을 첨가해서 잘 비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메뉴, 간장 계란밥의 대강이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참기름을 두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선택사항이다. 고소하지만 부드러운 참기름의 식감이 혼밥 만의 고독한 아우라를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다.

마지막은 고명을 올리는 단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빠트릴 수 없는 진지한 의식과도 같다. 그들의 세계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대부분 깨소금을 슬슬 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그들은 김가루나 후리가케를 뿌리거나 먹지도 않을 바질 잎을 음식 위에 슬쩍 올려놓기도 한다. 모양에 따라 맛의 위계가 달라진다.

아직까지 혼밥이 어색하다면 캣타워에서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식탁으로 부르는 것도 방법이다. 고양이 간식 차요추르 2-3봉이면 녀석도 못 이기는 척 옆자리에 앉는다.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이 정도의 소찬을 카메라에 담을 사람은 많지 않으리. 결정적인 순간은 밥상 위의 사이다 컵에 소주를 가득 부을 때. 비로소 요리는 완성되고 요리사의 귀에는 돌연 상투스가 울려 퍼진다.

나는 셰프다. 요리는 세상의 모든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 내가 만든 간장 계란밥은 내가 만난 오늘의 세계에 대한 한 줄 요약이다. 어디까지 요리를 해 보았는가. 나를 위해 먹고 마시는 이 행위의 존엄은 추상적인 의미의 인류평화나 우주의 진화보다 더 중요하다. 게다가 그 요리에는 삶 이외의 재료는 없다. 새콤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다가와서 한 입 베어 물어도 좋다.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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