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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l 02. 2020

프렌치 시크 (French chic)

만날 땐 볼키스, 떠날 때는 말없이

십여 년 전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적이 있다. 나 역시 노래방에서 신나게 말춤을 추며 놀았지만, 나중에야 싸이가 노래한 것이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싸이 스타일이란 것을 알았다.


싸이 스스로 말했던 ‘품격 있게 차려입고 느끼하게 춤추기 (dress classy, dance cheezy)’가 그 스타일의 핵심이다. 그의 말춤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우아한’ A급 문화에 대한 조롱이자, 스스로를 B급이라고 칭하는 자기 위악의 제스처로 읽혔다. 넌 그렇게 계속 근엄하게 살아, 우린 신나게 춤추며 달릴 테니까.


내 사랑은 불란서 영화처럼 우아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때로, 유치했던 기억들은 몸살 나게 아름다워

접어 두었던 미래와의 약속을 새롭게 하거나

부재중인 희망도 달무리로 돌아오게 한다


‘불란서 영화’처럼 중 / 전연옥


오래전에 읽은 이 시에는 프랑스 영화는 우아한 것이고 영화 속 사랑 또한 그럴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우아한 것은 불란서 영화 라기보다는, ‘불란서’라는 스타일 혹은 그 기호(sign)가 아닐까 싶다. '프렌치 스타일' 역시 하나의 신화, 거기에는 프랑스적인 모든 것이 우아하며 시크한 것으로 등장한다.


‘엘르’를 구독하고 샤넬 향수를 뿌리고 와인을 마시는 것은 적극적으로 프랑스적이 되는 것. 샤르트르를 읽고, 제인 버킨의 음악을 즐기고, 뮤지컬 ‘파리의 노트르담‘을 관람하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몇 개 프렌치 시크의 사례가 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비주' (bisou, 볼키스)도 그중 하나다. 비주는 신체적 접촉을 선호하는 프랑스인 특유의 로맨틱한 인사 방식이다. 빈번하게 뺨을 맞대므로 체취를 감출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 프랑스의 향수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 보라. 연적이나 배신한 연인에 대한 적개심감춘 채, 볼의 체온을 슬쩍 나누는 행위라니! 이 얼마나 우아하며 위선적인가. 이 얼마나 파탄적으로 우아한가.


프렌치 키스 또한 오리지널 프랑스제다. 언젠가 '잘 춘 한 곡의 탱고는 섹스보다 낫다'라는 탱고 예찬론을 읽은 적이 있는데, 탱고 대신 프렌치 키스를 넣어도 좋을 듯하다.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는 관심이 없지만  가끔 영화에 등장하는 프렌치 키스 장면에는 묘한 성적 충동까지 느낀다.


조금 결이 다른 '메이드 인 프랑스' 제품으로 프랑스식 이별 (French Leave) 있다. 원래는 파티 참석자가 호스트에게 알리지도 않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금은 연인 간에 사전 통보 없이 갑작스레 잠수를 타거나 홀연 사라지는 경우에 빗대어 쓰인다.


연락이 뜸했던 지인이나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고도 프랑스식 이별이다. 수년간 대화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던 SNS 친구들의 돌연한 퇴장이나 실종도 그에 해당한다. 프랑스식 이별이 더욱 냉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전의 다정한 볼키스와 뜨거웠던 프렌치 키스의 추억 때문이리.


'엘르'를 뒤적거리며, 보르도 산 와인을 홀짝거리며 우리는 오늘도 이름 모를 불란서 영화처럼 '시크'하다. 만날 때는 볼키스, 떠날 때는 말없이...


#french_chic

#프렌치시크

#비주

#bis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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