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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n 07. 2020

독의 한 형식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대체로 독을 품고 있다. 아예 그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사람들이 어디 그런가. 위험할수록 구미가 당기고 치명적일수록 유혹적이다. 바타유의 표현을 빌면 '금기가 있는 곳에 위반이 있다'

최고의 미식으로 꼽히는 황복도 그중 하나인데 제대로 맛보려면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한다. 황복에는 청산가리보다 10배 이상 강한 독성이 들어있다. 엷게 저민 황복 사시미에 애에서 분리한 독을 살짝 발라 입안에 넣어보라. 혀가 얼얼해지면서 돌연 눈앞에 신천지가 열린다. 그렇다고 독성의 강도를 조금씩 높이다가는 큰일을 치른다. 황복 사시미의 궁극의 맛은 생과 사의 임계점에 있다.

블루 드래건이 텍사스 해안에 출몰했다는 뉴스로 5월 한동안 포탈이 뜨거웠다. 녀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체동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셀럽이 된 진짜 이유는 체내에 저장하고 있는 치명적인 독 때문이다. 이 앙증맞은 것들이 독을 내뿜는 순간, 사람들은 열광하고 환호한다.

어디 이놈들뿐인가. 현란한 무늬를 갓에 두르고 있는 독버섯도, 아라베스크 무늬를 온몸에 문신한 독사도 자신의 종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다. 그것들을 일러 사악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시각일 뿐, 그들에게 독은 최후의 한 수, 삶이거나 죽음이다.

우연히도 미와 독은 한 몸에서 자라고 피어난다.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도 동시에 빛을 잃는다. 가시가 없는 장미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없듯, 님펫이 아닌 롤리타를 욕망하기란 쉽지 않다. 쥐스킨트의 최고의 향수는 젊은 여인의 주검에서 추출되고, 보들레르는 권태와 악행이 매독처럼 번져가는 악취 나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관능의 꽃을 피워낸다.

세상은 아름다운 만큼 천지 사방이 독으로 넘쳐난다. 얼마만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궁구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얼마만큼의 독을 자신에게 허락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적은 양의 독으로 즐거운 꿈을 꿀 것인가, 많은 양의 독으로 치명적인 사랑을 할 것인가.

독으로써 독을 다스린다는 이독제독 (以毒制毒)은 사실 허울에 불과한 수사일 뿐, 세상에 만연한 독과 아름다움을 누가 다스리거나 구분할 수 있으리. 지금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유월, 삶도 아름다움도 모순과 폐허 위에서 겨우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독#po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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