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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n 12. 2020

봄날로의 짧은 시간 여행

영화 ‘카페 벨 에포크’

* 스포 별로 없음

이런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마음속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5년간 뜨겁게 사랑을 불태웠던 마리 로랑생과의 결별. 실연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던 1912년 어느날, 그는 이 시를 쓰면서 사랑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흘러가는 것이 어디 사랑뿐인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

사랑은 흘러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그 사랑과 함께 ‘아름다운 시대‘ (La Belle Epoque, 1871-1914)도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사실 그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아름다운 시대’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중세인들이  중세에 살았던 것을 몰랐던 것처럼 그들은 그저 당대를 살았다. 그때가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지. 나중의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지었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리즈시절이 있다. 그 시절은 언제나 이미 지나쳐온 한 때, 과거의 어느 한 기간이다. 리즈시절의 당신은 물론 젊고 아름답다. 누구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그때의 기억은 비록 짧지만 매우 강력해서 한 생애에 걸쳐 부단히 반복 재생된다. 그 기억으로 우리는 남루한 현재를 버티고 산다.

당신의 그때는 언제인가? 영화의 주인공은 1974년 5월의 어느 날을 지목한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는 단순한 세상, 그래서 더없이 좋았던 시절이다. 주크박스에 동전을 넣으면 그룹 바카라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카페에 딸린 밀실에서는 대마초에 취한 일군의 남녀들이 난교를 한다. 무엇보다 그는 그날 ‘카페 벨 에포크‘에서 운명적 사랑을 만난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그때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그녀가 입었던 옷과 체취, 그녀의 말투와 표정, 그녀가 떨어뜨리고 간 스카프와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의 속살거리는 소리까지. 영화는 빛나던 청춘과 사랑이 어떻게 남루해지고 누추해지는 지를 스스로 복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들을 단지 추억할 수 있을 뿐, 현실로 다시 소환할 수 없다.

영화 속 한 장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에 엥겔스는 ‘1848년 빈티지 샤토 마고’라고 답한다. 엥겔스의 리즈시절은 1848년, 자신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던 때였다. 그는 1848년 빈티지의 와인을 마시면서 지나간 청춘과 사랑을 천천히 음미하고 간간히 미소 지을 뿐이다.

먼 훗날에 돌아보면 지금 현재도 ‘벨 에포크’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장정일의 표현을 빌면 '인생이란 20대의 어느 한 때를 가리킬 뿐, 나머지는 사족이다'. 삶이란 결국 사라지는 것. 유행가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그런 의미가 있’을 뿐이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는 이렇게 끝난다.

흘러간 시간도 흘러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카페_벨에포크
#아폴리네르
#cafe_belle_epoque
#belle_epo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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