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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Nov 14. 2019

달의 몰락

연애의 고수를 꿈꾸는이를 위한 공짜 팁 하나

그녀가 좋아했던 저 달이

그녀가 사랑했던 저 달이 지네

달이 몰락하고 있네.     


90년대 초중반에 유행했던 노래 중에 '달의 몰락'이 있다. 리듬이 신나고 가사도 단순해서 2차로 노래방에 가면 노래 좀 한다는 사람은 한 번쯤 시도했던 레퍼토리였다. 달이 지자 사랑도 몰락했다는 신파.   

   

달은 종종 비극적 멜로의 주연이거나 배경이 된다. 여기 비탄에 젖은 한 여인이 있다.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는 풀어헤친 채  못 이룬 이승의 사랑을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죽어서도 이승을 건너지 못하는 상처 받은 영혼들은 달빛이 찬연할 때 등 뒤에서 홀연히 쓰윽 나타난다.      


서양 속담은 달빛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라고 말한다. 달은 매일매일 얼굴을 바꾸는 변덕스러운 존재.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하물며 이기적인 인간들의 그 이상한 심리게임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대신에 여기 성공적 러브라인의 조건을 시사하는 고릿적 신화가 있다.   

   

원래 해와 달은 금슬 좋은 부부였다. 아무것도 없는 주위가 너무 황량하였으므로 달은 해에게 나무와 숲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곧이어 기린과 사슴, 새와 두꺼비.. 주변은 생명과 정령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는 피조물의 칭송에 귀가 멀고 교만해져서 달을 방치하게 된다. 달은 외롭다. 늘 곁에서 지켜보던 한 존재가 이 틈을 파고든다. 어둠이다. 어둠은 스스로를 낮추어서 달을 빛나게 한다. 결국  둘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또 하나의 신파.      


라캉에 의하면 '사랑은 우리가 특정한 타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고, 동시에 그 타자가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고수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연애의 고수는 최고 난이도의 기술을 요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질병이라고 정의했다. 누구는 '사랑은 미친 짓 (lunatic)'이라고 말한다. 달은 우리가 말하는 사랑처럼 본질적으로  로고스보다는 파토스, 충만보다는 결핍, 현실보다는 판타지에 기여하는 존재이다.

  

보름달이 뜨고 물이 차오르면  여인은 달빛에 홀려 첨탑이 있는 성으로 향한다. 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맨발에 닿을 듯하다. 주변은 귀기가 서려있다. 무언가를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던 개들도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한다. 드라마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다.      


달이 뜬다. 달은 아직까지 짙은 관능과 영감이 밀당하고 있는 곳, 생의 허기를 느끼는 인간들과 짓궂은 정령들이 밀어를 나누고 속삭이는 곳이다. 그러나 달이 지면, 불행히도 당신의 사랑도 끝이 난다. 방법은 단 하나. 당신 스스로 깊은 어둠이 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달은 몰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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