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키팅 선생이 책을 찢는 부분이다. “자, 이제 그 장 章을 몽땅 찢어 버려라. 알았지? 찢어라! 계속!”. 일부 학생이 그의 말에 따라 책을 찢기 시작하고, 일부가 주저하며 머뭇거리자, 선생은 아예 휴지통을 들고 책상 사이를 걸으며 재촉한다. “계속 찢어라, 제군들! 이건 전투다. 전쟁이다.”
시는 감정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읽는 것이지 주어진 방법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키팅의 교육적 신념은 교과서를 찢는 극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키팅과 학생이 찢어 버린 책은 클린스 브룩스(Cleanth Brooks), 로버트 펜 워렌 (Robert Penn Warren) 공저인 <Understanding Poetry>의 서문 부분이다.
그 책은 우연히도 40여 년 전 내가 학창 시절에 수강한 ‘영시의 이해’라는 과목의 수업 교재였다. 우리는 성실하게 그 책에 밑줄을 긋고 암기하고 책에서 출제한 문제로 시험을 치렀으나, 고백건대 그 책은 정식 판권을 취득하지 않은 해적판이었다. 저작권의 개념이 희박한 시절이었으니 많은 학생이 정식 ‘라이선스’ 도서 대신 학교 앞 제본소에서 값싼 복사본을 샀다. 가성비 높은 구매 방법이었고 그리 부끄러운 줄도 몰랐으니 이제 와 그 시대를 소급해 자책하면 무엇하겠는가. 표지며 제본까지 수입 도서와 똑같아서 복사본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원본’이었다.
당시 종로에 있던 출판사 ‘H 문화사’는 ‘해적의 명가’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원서를 사려는 학생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키팅이 찢어 버린 ‘문제’의 책뿐 아니라 <Greek Mythology>, 두툼한 ‘벽돌책' <English Poetry Anthology> 등도 내가 그곳에서 구입했던 해적판 도서 목록에 들어있다.
어디 책에만 한정된 얘기겠는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른바 '빽판'으로 불렸던 값싼 복제 LP가 버젓이 레코드점에서 판매됐고, 비디오가 보급된 후에는 복제 영화 테이프, 개인용 컴퓨터가 보편화된 이후에는 게임용 복제 CD-ROM이 길거리 좌판에서 헐값에 거래됐다. 이러한 ‘해적’ 행위는 초기 인터넷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 지속됐는데, 내심 ‘인터넷은 공짜’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인터넷 사용자들 다수가 공감했던 구호는 ‘인터넷은 평등하다’였으니 누군가 ‘평등’을 ‘공짜’로 살짝 ‘패러디’했을 수도 있다. 다들 어리숙하고 무지했으며 그만큼 용감했던 시절이었다.
키팅 선생이 찢던 그 책으로 공부할 당시, 한창 유행했던 비평 이론 중 하나가 ‘상호텍스트성’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텍스트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론의 골자다. 이 용어를 처음 제시한 문예 비평가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텍스트는 과거에 있던 텍스트들의 모자이크이며, 인용들의 흡수와 변형이다.” 그녀가 말한 상호텍스트성은 ‘인용’, ‘패러디’, ‘리메이크’, ‘혼성모방’ 등의 문학적, 철학적 방법론을 의미했으나, 개념을 설익게 이해한 사람들에 의해 지식 ‘절도’라는 문화적 반달리즘이 곧잘 자행됐다. 누구는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을 들먹였고 ‘독자의 탄생’까지 언급했다. 지식에는 원래 주인이 없고 ‘창조는 곧 인용’이니 ‘네 것이 내 것, 내 것이 곧 네 것’이라는 괴변이다.
그러나 창조도 있고 인용과 변용도 있으며 나아가 창조적 인용도 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원본의 ‘아우라’가 사라진 기술 복제 시대를 언급했을 때, 역으로 그가 강조했던 것은 오히려 원본의 유일성, 대체 불가능성일지도 모른다. 달랑 ‘변기’ 하나를 전시해 놓고 그것을 <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뒤상, 메릴린 먼로의 사진을 여러 장 복사해 ‘팝 아트’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앤디 워홀, 바닥에 캔버스를 눕히고 그 위에 오일 페인트를 무작위로 뿌려 현대 미술의 지평을 넓혔던 잭슨 폴락이 그 ‘원본’들이다. 이후의 누군가가 같은 행위를 해도 그것은 아우라가 사라진 복제품, 짝퉁일 뿐이다. 그래서 피카소가 말한 “좋은 예술가는 베낀다.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문장은 반어적이나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옛날, 세상에 없던 지식을 닥종이나 양피지 위에 하나하나 필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의 모든 책은 원본이었고, 책 위에 쓰인 지식은 소수만이 소유할 수 있는 권력이었다. 인쇄술의 발달에 이은 인터넷의 등장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지식혁명을 가져왔다. 누군가가 생산한 지식은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공유되어 지식의 평등, 지식의 민주화에 기여했으나, 그 부정적 유산 또한 만만치 않다. 이른바 지식 ‘공유’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지식 생태계의 교란 행위가 그것이다.
Ctrl + C, Ctrl + V, 두 번의 단축키로 우리는 누군가의 지식을 무단으로 도용, 모방, 복제함으로써 원본 지식의 아우라를 훼손하고 손쉽게 사유화한다. 더 큰 문제는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데 있다. ‘짝퉁’ 지식이 시장에 범람할 때 양질의 ‘진짜’ 지식은 설 곳을 잃고 결국 자취를 감춘다. 지식 생산자와 창작자 공히 어떤 의미에서든 노동자인 한, 제값에 팔리지 않는 상품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은 양질의 지식 생산과 사회적 '공유'라는 양가적 가치를 고루 고려한 최소한의 윤리적 개념이자 법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원하기 쉽지 않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키팅 선생이 찢었던 그 책, 서가 한 부분을 당당하게 차지했던 그 복제판 책을 서둘러 폐기해야 할 이유다. 지속적이고 발전 가능한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희망한다면, 이제 미련 없이 그 책을 찢어 버릴 때다. 키팅 선생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 “계속 찢어라, 제군들! 이건 전투다.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