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식 이별

by NJ

중국 윈난성에서 여자가 남자 가방에 문고리를 걸면 사랑이 끝났다는 신호다. 몽골인들은 입고 있던 옷을 찢어 상대에게 건넨다. 둘 다 이별의 방식이지만, 전자는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고 후자는 재회를 기약하고 떠나는 것이다. 간지 나는 이별의 방식이다.


시인 김경미는 시 <카프카식 이별>에서 ‘사랑에는 처음부터 이별이라는 고통의 몫도 들어있다’ 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이별과 상처는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사 모든 만남이 한 시절 인연이고, 나와 세상과의 만남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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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던가. 가수 김광석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노래했다. 사랑과 이별 둘 다 삶의 일부이고 그것이 언제 오고 갈지 알 수 없으니, 뜨겁게 사랑하다 사랑이 식으면 쿨하게 헤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이별의 순간, 울고불고 난리 쳐야 소용없는 일이다. ‘있을 때 잘하라’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나, 최선을 다해도 열정은 시들고 우리는 서서히 옅어진다. 그 과정 또한 사랑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인 김경미는 사랑에 내재한 이별의 아픔을 ‘카프카식’이라 했지만, 그 말의 원래 뜻과는 거리가 있다. ‘카프카적’ (Kafkaesque) 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근원적 모호성’이자 ‘항구적 흔들림’이다. 그의 소설 풍경처럼 ‘성’ 城은 안개 속에서 희미하고, 그것은 풍문으로만 존재한다. ‘K’는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주변을 반복적으로 배회할 뿐이다.


실제 카프카의 삶도 그랬다.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작가지만, 개인적인 삶은 유난히 고독하고 불우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나 그는 자주 머뭇거렸다. 화끈하게 사랑하지 못했고 이별의 과정 역시 지리멸렬했다. 현실의 카프카가 불행했다면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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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또 한 명과 이별했다. 당사자인 그는 애당초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며 횡설수설할 때부터 알아봤다. 구두를 신은 채 열차 건너편 좌석에 다리를 걸친 모습은 남 보기 민망했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양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모습에서 교양의 터럭 한끝도 찾기 어려웠다. 폭탄주를 돌린 후 시연해 보인 어퍼컷 동작은 어설픈 연기에 가까웠고, 손가락에 새긴 왕 王자에서 공화국의 암담한 미래를 예감했다. 무슨 잘못인지 여론이 들끓자, 애완견 앞에 사과를 한 알 놓은 후 사진을 찍어 SNS에 게재한 적도 있다.


그가 보인 이 모든 초기 기행은 쉬 간과할 수 없는 ‘징후적’ 사건이었다. 구린 냄새가 진동했으나 결국 갈때까지 가고 나서야 그 난폭한 폭탄주와 패륜적 주사는 멈췄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긴 치욕의 시간이었다. 내 언어는 고결하므로 새삼스레 지난 일을 구구절절 곱씹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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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제 이별의 순간, 이른 새벽에 일어나 눈 비비며 TV 앞에 앉아있던 이유는 오래 준비했던 이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누가 이별의 모습을 최후의 언어라 했나. 그의 ‘정신 승리’는 예견된 것이었으나, 조폭 대장다운 ‘가오’도 의리도 없었다. 평생 쿨하지 못한 '선비'로 살았듯 이별의 모습 또한 찌질했다.


불안, 주저, 회의가 교차하는 카프카의 흔들리는 눈빛이 새삼 떠오른다. 카프카 한 줄 읽었을 리 만무한 그와의 이별은 ‘카프카식’ 보다 결별의 방식이 낫겠다. 단 한 순간도 그를 사랑한 적 없으니 아픔 따위 남아있을 리 없다. 잘 가라는 말도 차마 못 하겠다. 우리 쿨하게 헤어지자. 마지막 덕담이다. 부디 그곳에서나마 긴 세월 보속하며 착하게 사시라.


사족 : 지난 1월 22일 쓴 글입니다.


#프란츠_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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