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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장하는 건 방어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6화. 나를 감춘 건, 나를 위한 일이었다

by 딩끄적

나는 사람들에게 하염없이 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밝으면서, 생각과 감정에 솔직한 사람. 그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었고, 실제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를 잘 표현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 여겼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면 표정부터 드러나 감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오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말과 행동에서 힘든 기색이 비쳤는지, 여러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묘한 감정과 함께 그동안 몰랐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센 척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솔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고, 작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어도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들키고 말았다.


"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 말과 함께 짠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나는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왜, 힘든 걸 보이고 싶지 않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과거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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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울증으로 한참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다운되어 있었고, 힘들다고 불평을 자주 했다.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울증에서 벗어난 후, 나는 다행히도 이전보다 훨씬 더 활기찬 사람이 되었다. 좋은 쪽으로 변한 내가 마음에 들었고,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매일 불평하는 사람,

힘들다고 찡찡대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밝고 웃음이 많은 사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긍정적인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울했던 감정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어둠으로부터 나를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밝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스스로를 포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를 포장하는 건, 다시 어둡고 우울했던 나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힘들다', '우울하다'의 감정을 인지하는 순간 그때의 나로 되돌아갈까 봐,

다시 그 어둠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나는, 그 감정들을 애써 외면해 왔다.


하지만 힘들고 우울한 감정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언제나 좋은 일만 겪을 수 없듯, 언제나 밝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힘들다가도, 또 어느 때는 밝게 지내기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힘든 감정을 계속 외면하다 보면 언젠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였는데, 오래도록 눌러두면 그 감정들이 점점 자라나 내 안에서 태풍처럼 몰아치게 된다. 스스로는 힘들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내면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힘든 감정을 '나쁜 감정'이라 여기며 '나는 괜찮다'라고 애써 포장하지 말자. 지금 내가 왜 힘든지, 그 감정을 충분히 마주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이 아직 작을 때, 조금씩 꺼내 떠나보내며 안녕해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말로 괜찮아진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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