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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엔, 그냥 조용히 숨는다

7화. 동굴 속에 들어가는 이유

by 딩끄적

매일 새벽 4시 30분, 화물 열차 소리와 전철 첫차 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잠들 때가 있었다.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오후 2시였다. 그때의 나는 인생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학교는 졸업했지만 직장은 잡지 못했고, 전공을 살리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친구들은 좋은 학교에 다니거나 이미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았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 뭐라도 더 도전해 보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울증은 더 깊어졌고, 모든 것을 탓할 뿐이었다.


'돈이 없어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한 거야?'


스스로 돈을 벌어 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환경 탓만 하며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이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이 한심하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동굴 속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1년 반쯤이 지났을 즈음,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울에 찌들어 입꼬리가 쭉 내려간 표정, 가족들에게 짜증만 내고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드라마만 보고 있는 나. 너무나도 한심해 보였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네가 원하는 모습이 이거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처음으로 나 자신과 진지하게 마주한 시간이었다. 빈 노트를 꺼내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적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꿈꿨던 장래희망, 지금까지 즐거웠던 일,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현재 나의 상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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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마침내 어두운 동굴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 이후로도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홀로 그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은, 이제 그곳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자 조용히 울면서 내가 왜 힘든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내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렇게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인다.


마음을 충분히 다스리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밝은 빛이 가득한 동굴 밖 세상으로 나온다. 마치 동굴에 들어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원래 그 빛 속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나도 모르게 마주한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내 안에서 흘려보내기 위해 잠시 동굴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그곳에 힘들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가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해소하는 시간. 사람마다 그 방법은 다르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겨낼 수도 있고, 나처럼 조용한 동굴 속에서 혼자 이겨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정답은 없다. 단지,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법이면 충분하다.


나도 늘 같은 방법을 써온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겨냈지만, 지금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걸 선택한다. 이 방법도 언젠가는 또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당신도, 당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감정을 충분히 흘려보내고, 더 단단한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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