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2. 잊혀진 목소리
며칠 전,
동묘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카세트를 하나 샀다.
녹슨 손때와 바랜 버튼,
볼륨 다이얼이 헛도는 그 낡은 기계가
왠지 모르게 나를 멈춰 세웠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집엔
오래전 소장해둔 테이프가 몇 개 있었고,
지금도 그게 재생이 될까…
그냥, 궁금했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테이프 하나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딸깍."
소리가 들리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쉿쉿거리는 잡음 끝에
낯익고 오래된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야, 이거 듣고 있으면 꼭 연락해라. 진짜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오래전 내 친구였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사람.
그 목소리 위로
내 웃음소리도 겹쳐 들렸다.
내가 어릴 적 쓰던 말투,
그때의 웃음,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들뜬 목소리.
그건 단순한 테이프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살았던 시간의 파편이었고,
다시는 꺼낼 수 없을 줄 알았던 감정의 음색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 테이프를 껴안듯 두 손으로 잡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무겁고 따뜻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지금도 내 안엔 살아 있었다.
사라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말.
잊혀진 줄 알았지만
나를 다시 불러내는 숨결.
그게,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