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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n 19. 2023

언어에 진심인 한국인, 소통에 진심인 한국어.

한글이 쉽다 해서 한국어가 쉬운 것은 아님을 잊지 말자.

한국은 언어의 중요성을 오랜 옛날부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OECD 국가들 중 문맹률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사실상 문맹률이 0%인 나라인 것이 그 수치적 증거다.


낮은 문맹률을 달성하는 데에는 공교육제도와 높은 교육열이 물론 큰 역할을 했지만, 일등공신은 한글이다. 세종대왕은 중국의 문자인 한문이 어려워 읽고 쓰지 못하는 백성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백성들이 글을 깨우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글 창제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 취지에 맞게, 한글은 익히기가 매우 쉽다. 어려움 없이 익혀 사용할 수 있게끔 구축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글자체계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나 역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어려워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글을 모를 때에 오디오 동화책을 접할 수 있었고, 그걸 매일같이 반복해서 듣더니만 어느 날 동화책을 펼쳐 조금씩 따라 읽기 시작하고 상점 간판도 읽을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별다른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힌 상태로 유치원에 입학했다.




한글이라는 문자를 익히는 것이 쉽다 하여 한국어가 쉬운 것은 아니다. 표현이 풍부하고 융통성 있는 문자인 만큼 변칙적인 문법이 이해하기 까다롭고,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으나 그것이 읽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전 문단에 적힌 "표음문자"를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한자어가 기본이라 의미가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에, 대충 맥락만 보고 정확한 뜻은 모른 채 지나가거나,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는, 혹은 인터넷 검색을 하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또한 같은 내용의 글을 읽고도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적혀 있지 않은 내용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역시 문해 능숙도와 관련된 문제다. 게다가 언어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소통을 돕는 도구이기 때문에,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적인 부분만 능숙하다 하여 언어를 잘 다룬다 할 수는 없다. 




예전에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의 미국 학력위조설을 퍼트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타진요(타블로의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집단이 있었다. 미국 거주자로서 주요 의혹들이 억지임을 쉽게 알 수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했다. 분노에 차 있는 타진요 회원들에게 사실확인을 해주면 모든 게 바로잡힐 수 있을 거라 믿고,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모여있던 타진알(타블로의 진실을 알려드립니다)이라는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타진요의 의혹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시물을 꾸준히 올렸다. 하지만 매일같이 타진요 회원들이 악플을 달고 반박을 했다. 반박하는 내용을 보면 글을 읽지도 않은 것 같았다. 댓글로 친절하게 다시 설명을 해주면, 문맥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을 붙들고 늘어지거나, 잘못 이해하고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철회하려 들지 않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만큼 오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신이 믿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같은 주장을 고수하거나, 타블로를 미워하고픈 마음에 의혹이 무작정 사실이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런 이들에게 논리가 먹히리라 생각하며 아까운 시간을 작문에 낭비하고 감정을 소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내가 언어의 기술적인 사용에는 능숙했지만 소통에 요구되는 무형의 심리적 요소들을 이해하기엔 공부도 경험도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익히기가 쉬우니,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적당히 의사소통 하는 것에 안주하게 된다. 요즘처럼 모든 정보를 간결한 형식의 글이나 영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선호되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발명된, 언어로서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충분한 귀한 문자다. 대충 사용하기는 좀 아깝지 않은가? 


우리가 한글이 창제된 이후 지금까지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 외에 왕이 자체적으로 만든 나라 고유의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급하여 정착시키는 데에 성공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은 변화를 반기지 않고 적응이 느리기 때문에, 관성을 깨고 새로운 것을 사회전반에 단단히 심는 것은 고된 일이다. 당장 아침에 내 한 몸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 문자처럼 모든 이들의 생활의 근간이 되는 것을 바꾸는 작업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문자 자체의 우수한 편의성이 백성들에게 불편을 감수할만한 장점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현대의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고유의 문자가 있는 것은, 한글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한 조상들의 의지이자 대를 거듭한 꾸준한 노력의 결과다. 새로운 고유 문자 정착을 향한 노력의 어느 한 부분만 헐거워졌더라도 한글은 서서히 사라졌을 터니, 왕부터 백성까지 한국인들이 얼마나 언어에 진심인지는 현재 한글의 입지만 봐도 입증되는 셈이다. 


문자를 읽는 능력만으로 언어능력이 자동으로 발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에도 숨겨진 지름길 따위는 없다. 많은 양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단어, 맞춤법, 다양한 표현법 등을 학습하고, 읽은 내용에 대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깊게 생각하고, 토론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글을 써보아야 한다. 게다가 평생에 걸쳐 지속하지 않으면 퇴행하는 기술이기에, 꾸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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