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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n 27. 2023

독서와 글쓰기 없이는 소통도 없다.

기본에 충실하자.

어릴 적 어머니와 외출을 하면 늘 사달라고 조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군것질이 하고 싶다던가 장난감을 가지고 싶다던가. 무엇을 조르던 주로 거절당했지만, 서점에 들를 때만은 달랐다. 언제나 한두 권의 책을 골라 사달라고 할 수 있었다. 거절이 없는 것이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외출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사들고 와서는 닳도록 읽었다. 그렇게 책은 나를 둘러싼 공기가 되었다. 


몰입해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재미있게 읽은 한 권의 책을 닳도록 반복하기도 했고, 주제나 독자층, 글의 난이도에 구애받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책도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어른의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작은 허세를 부려보는 재미도 있었으니까. 


유치원 때였던가, 한국 위인전에 나오는 학자형 위인들은 모두 일찍부터 천자문을 외웠다는 사실을 위인전집을 읽던 중 알게 되었다. 위인들이 멋져 보였던 모양이다. 한동안 천자문을 매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어른들 앞에서 큰 소리로 "하늘천 땅지~"를 읊어대었다. 낯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비아냥이나 무관심이 아닌 귀엽다는 웃음, 칭찬과 격려만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탐구하고 마음을 정돈하고, 그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를 한다는 의미다. 천자문을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분명 조금은 외웠고, 한문과 친해졌다. 위인들을 따라 해보는 것으로 마음가짐을 올곧게 했다. 한시의 뜻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사유를 확장했다. 천자문을 외는 척하던 시끄러운 나를 기특하게 여긴 어른들은 그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동화나 소설에 크게 반하면 그 세계에 나의 자아를 빠트렸다. 제약 없는 상상의 세계. 꿈과 동경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나의 방은 낮에는 사슴, 다람쥐들과 뛰노는 숲 속이었고, 밤에는 꼬마 흡혈귀가 몰래 놀러 와 나에게 흡혈귀 망토를 입혀주는 접선 장소였다. 동네 슈퍼에서 초콜릿을 살 때면 혹시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갈 수 있는 황금카드가 들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 무렵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보며 울고 데미안을 만나 아프락사스에 매료되기도 하며 내 주변과 세계를 보는 나만의 시선, 철학, 사상을 키워나갔다. 




책에 파묻혀 바라보는 세계와 달리, 온전한 현실은 건조하고 아프고 허무한 일이 많았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니 조금 더 밝고 희망찬 회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나의 일상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적당히 평탄했다. 산타 클로스를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믿었을 정도로 천진하게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인지 그래서인지, 당사자로서 매일 부딪혀야 하는 현실의 잔 조각들은 언제나 뾰족하고 아팠다. 얇고 투명한 나의 감정의 살갗. 어려서는 그 안이 더욱 훤히 내비쳤기에, 비교적 작은 일에도 상처는 더 잦고 흉터는 더 깊었다. 


아픈 마음을 슬픔으로 달래주는 책을 굳이 찾아 읽은 적은 없다. 내가 보고 읽는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좋았다. 대신 나는 나의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때로는 비밀스레 간직하고 싶은 가슴 설레는 기쁨과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의 공책은 그렇게 감정의 쓰레기통이자 기록 창고로서 늘 함께 했다. 




몰입하여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 그를 기반으로 버거운 현실의 희로애락을 글로 풀어내는 것. 그 행동을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얻어진 것들이 참 값지다. 언어 소통의 기술적 측면에서 가장 커다란 수확은 역시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양질의 글을 읽는 것과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써 보는 것을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발달시킬 수 있는 언어 능력의 핵심이자 소통의 열쇠다. 


독서와 글쓰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권의 책을 완독 한다고 갑자기 현명해지지 않고, 글 한편 공들여 잘 쓴다고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값싼 도파민 공급에 여념이 없는 온라인 콘텐츠는 이를 더욱 지루하게 만든다. 당장 먹고사는 것도 바쁜데 글을 많이 읽고 쓰라는 건 팔자 좋은 소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소통능력 때문에 더욱 많은 시간, 감정 그리고 돈을 낭비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예외 없이 소통해야 한다. 소통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애초에 문해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상대의 이야기의 요점을 파악할 수 없다면, 모든 소통이 곱절로 힘들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성인이 되어서는 최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진 읽고 쓰는 것에 많이 소홀했음에도, 운 좋게도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경험이 소통에 있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혜택을 제공해 왔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온 이후 늘 부족한 영어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주제를 파악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언어 소통 능력의 본질적인 부분은 계속해서 쓸모가 있었고, 타지 생활 적응에 큰 힘이 되었다. 

  

조급해할 필요도, 이미 늦었다며 포기할 필요도 없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문학책 한 권을 천천히 읽어보자. 떠오르는 생각을 또박또박 공책에 적어보자. 며칠만 반복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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