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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10. 2023

한국어도 못하는데 영어?

과도한 영어 조기 교육, 부작용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한국에 들렀을 때 대치동 어느 아파트 단지에 있는 빌딩에 들를 일이 있었다. 대치동은 부촌이고 학구열이 높다고 들었으나, 겉보기에 모든 것이 오래되고 허름하여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작고 낡은 아파트 단지와 별 다를 것 없어 보였다.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이 대부분인 빌딩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친구와, 그리고 학원 선생님과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치동에 대해 전해 들은 이야기는 틀린 곳이 없겠구나, 그 순간 실감했다. 




앞서 말했듯 한글은 분명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문자이지만, 고립어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현시대에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 연유로, 익히 알려진 한국의 유난한 교육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끔 가르치려는 부모세대의 노력이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아이가 영어로 대화하는 경험을 쌓게 할 방법을 고민한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 비영어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에는 많은 보상이 따른다. 직업적으로 선택지가 더 다양해지고, 더욱 많은 기회가 열리며, 그렇기에 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며 우수한 경력을 쌓는 것이 용이해진다. 일반적인 경우 영어로 얻을 수 있는 지적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고 질도 우수하기 때문에, 지식의 습득, 학문적인 성취에도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언어는 문화이기에, 영어를 이용해 서구 영어권 및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보다 깊이 있는 소통을 도모하여 문화적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이는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국제적인 시각을 갖추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다양한 문화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개인과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영어라는 강력한 소통의 도구를 거머쥐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다 보니 당연하게도 너무도 많은 영어 학습법과 학원들이 생겨났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려 한다면 사실 방법은 궁극적으로 한 가지다. 영어공부를 최대한 어릴 때 시작하여 꾸준히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가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부모들의 바람과는 달리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방법을 알고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방법론부터 성공담까지, 영어교육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멈추지를 않는다.  




내가 학생이었던 80-90년대에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의무교육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파벳과 간단한 구문정도를 익히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유난하다 했었는데, 이제는 형편이 허락한다면 당연하게 영어 유치원을 생각하는 분위기다. 부잣집 꼬마들은 방학에 하와이 등으로 어학연수를 간다. 


초등학교 때  영어회화 교재를 처음 접한 기억이 있다. 카세트테이프에 나오는 영어 발음을 듣고 문장을 따라 읽어보는 형식이었다. 그 당시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동생과 이 교재를 같이 사용했으니, 동생은 나보다 5년 더 빨리 영어를 접한 셈이다. 계속 한국에 거주한 동생보다 미국에 근 20년을 거주한 내가 물론 언어로서의 영어는 더 잘 하지만, 동생이 발음은 더 좋다. 한국에서만 지낸 것을 감안할 때 듣기 능력도 뛰어나다. 


동생 개인의 특출 난 재능이나 뼈를 깎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영어를 어린 나이에 접할수록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과 억양을 갖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경험에서도 드러나듯, 영어 조기 교육만이 줄 수 있는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국어를 제대로 배우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무리해서라도 조기 교육을 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같지만, 모국어를 통한 언어 소통 능력의 발전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배우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아이에겐 모국어인 한국어를 중점으로 익히고 사용하며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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