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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25. 2023

"원어민 수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뭐든 과유불급이다.

한국에서 자랄 적, 영어실력은 한국 기준 평범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80-90점대의 점수가 나왔고, 학업성취도에 많은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큰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으로 역이민 온 친구 K와 팀을 이뤄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K에게 영어는 어렵지 않았고, 발표력도 좋았으며 발음도 독일식 억양이 섞여 멋지게 들렸다. 나는 영어 말하기를 잘하는 학생일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대회에 나간 것은 참 무식해서 용감한 도전이었다 싶다. 


K와 함께 대본을 보고 매일같이 연습에 매진했으나, 팀으로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K만 따로 뽑아 상을 주었다. 팀이지만 상은 같이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학교의 결단이 부당하게 느껴져 부아가 치밀었고, 팀인데도 불구하고 수상 대상에서 굳이 배제되어야 했을 만큼 영어를 못하는 내가 K만큼 멋진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울적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같은 팀이니 수상이 쉬울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여, 반드시 잘 해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꼭 필요한 상이 아니었기에 입상해야만 한다는 절박함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태생적인 차이를 어찌 극복하겠는가. 내가 아무리 노력했다 한들, 영어가 유창한 K와 비교가 되어 실제보다 더욱 못하는 것처럼 보였을 공산이 크다. 


일찍이 효율 좋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영어공부를 하는 건 나에게 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름이 없겠구나-라는 것. 영어를 잘하려는 꾸준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 외에도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나만의 다른 무기가 많이 필요하겠구나라는 것. 쉬운 길만 찾으려 하면 안 되겠다는 것. 




한국인이 한국어로 고등 수준의 문해력 및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만 해도 평생을 투자할 일이다. 영어라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요요 없는 다이어트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나처럼 청소년 시기까지도 별 준비가 안 되어있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릴 때 영어 조기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영어와 한국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되려 모두 놓치게 될 확률이 크다.  


물론 K처럼 영어와 비슷한 언어(독일어)가 모국어일 경우에는 비교적 학습이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문장구조도 비슷하고 단어들도 어원이 비슷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순이 같고 한자어에서 비롯된 단어들이 피차 익숙하여 함께 배우기 편한 것 역시 좋은 예다. 이런 경우엔 굳이 조기 교육 없이 다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 배워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고립어인 한국어와 그 구조나 어원을 전혀 달리하는 영어를 함께 배우는 것은 혼란스러운 일이다. 조기 교육을 한다 해도 평소 더 자주 사용하는 모국어와 같은 언어적 성취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고, 오히려 모국어 능력의 발달 과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로 배운 적 없던 영어에는 큰 어려움이 없던 K도, 어릴 적부터 한국 부모님에게 한국어를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학업을 수행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의 재미 교포 2세들을 많이 만났다. 모국어인 영어를 충분히 익힌 이후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어 따로 공부하지 않은 이상, 성인이 되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상황인데, 나중을 위해 한국어를 함께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해봐야 그 논리를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없으니, 학습에 동기부여를 하기 힘든 것은 별도리가 없지 싶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린 시절 모국어로 사회적 언어 능력을 성장시키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한계가 생기는 것이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문화를 반영해야 제대로 쓰일 수 있다. 기술적으로 외국어를 아무리 잘 다룬다 해도, 문화적인 이해 없이 제대로 구사하기는 어렵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경우, 미국(영어권 국가)과 한국 두 나라에서 동시에 자랄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두 문화를 같이 흡수할 도리가 없다.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막상 현실적인 한계가 분명한 상황 속에서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한국인들. 어쩔 수 없이 전 지구적 언어 소통 전쟁의 패배자가 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유창한 영어실력 없이도 6.25 전쟁 휴전 협정 이후 근 7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모두의 영어 실력이 다방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뭐든 과유불급이다. 원어민만큼 영어를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발버둥 쳐야 할 이유는 없다. 


조금은 자신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나는 한국인이다, 모국어도 아닌 영어 따위 유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다소 당찬 마음가짐. 우리에겐 무기가 많다. 어차피 나는 원어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만의 승리를 향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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