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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09. 2023

모험담은 계속된다.

제로버스(zeroeverse)의 탄생.

모국이 아닌 미국에 살면서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끼여 있는 내가 싫을 때가 많았다. 많은 고난과 역경이 그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했고 노력해 봐야 한계가 뻔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기운이 빠졌다. 


미국인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미국인처럼 여겨지기를 바란 적도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처럼 미국 사회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반면 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힘든 일을 겪을 때면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싶어 분통이 터졌고, 한국인들과 소통하며 위로받았다. 이런 정처 없는 자아가 표류를 거듭하다 보면 박쥐 같다는 소리도 듣겠구나 싶다. 


이렇게 그냥 길을 잃고 끝나는가 싶던 방황의 끝자락에 깨닫게 되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장소에 머무르며 자신만의 모험을 하는 이들의 애매모호한 중간적 정체성, 충족되기 힘든 소속감은 필연적이다. 동시에 모험이 없는 뻔한 곳은 꿈꾸는 자의 무덤이다. 결국 중간 지점 모호한 어딘가가 내가 속한 자리이고 나의 꿈이 존재하는 곳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비슷해 보이는 세상, 진짜가 귀해질 세상. 남과 다른 나만의 모험담이 이 시대가 찾아 헤매게 될 유일한 매력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훔치는 매력적인 서사가 있는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 사람의 생각을 궁금하게 여기고, 그렇게 애착을 형성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이 열릴 것이다. 의미 있는 소통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괜스레 불안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계속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전하여 꿈을 이루면 그만이다.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한 불명확한 이곳에서 나는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기에. 




언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해야지'처럼 한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정복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나에게 유용한 부분이 있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다양한 언어의 사용법을 골고루 익히는 것에 전략적으로 나의 시간과 노력을 분산하여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유리하다. 


훌륭한 소통 능력이라고 하면 주로 유창하고 화려한 언변과 필력, 카리스마를 떠올린다. 분명 소통을 잘하고 싶다면 꾸준히 발전시켜야 하는 중요한 기술들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인 것은 영어나 마찬가지다. 누구나 역사 속 회자되는 지도자들처럼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연설을 할 수도 없고, 프로 작가나 저널리스트 수준의 필력을 가질 수도 없다.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억지로 소유하려 발버둥 칠 이유가 있을까. 


내가 아닌 것이 되기를 갈망하고 그에 집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불명확한 중간세계에 자리 잡고 꿈을 꾸듯, 그렇게 나만의 소통법을 찾으면 된다. 나만의 서사와 맞물리는 소통법을 찾고 발전시키다 보면, 나의 이야기에 함께 공감해 줄 사람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언어에 집중하는 대신,  여러 가지 언어를 배워 나로서는 도무지 갈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곳까지 도약해 보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나에 집중하여 장인이 되는 것보다 엉성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로는 할 수 없는 여행을 했고, 쌓을 수 없는 경험을 쌓았다. 친척들 앞에서 천자문 외우는 척이나 하며 우쭐해하던 꼬마가, 그 간의 다사다난한 삶을 돌아보며 언어와 소통에 관한 책을 쓰고 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책에 공유한 모든 깨달음과 함께, 생성형 AI를 사용하여 한국도 미국도 아닌, 과거도 미래도 아닌, 문명도 황야도 아닌 "제로버스(zeroeverse)"라는 가상의 모호한 콘셉트 공간을 글과 함께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모험하는 중간자로서의 나의 자아를 부각시킨 세계관을 쌓아나감과 동시에, 도전하고 꿈꾸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 나가는 이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소속이 불명확한 모험가들이 꿈을 좇아 창작과 사유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유롭고 안전한 공간으로 제로버스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각인될 수 있도록, 특별한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세계관을 확장하고 유익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새로운 꿈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참으로 설렌다. 


소통법을 찾는 여정을 글로 적는 과정은,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가며 나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고 알아가는 뒤늦은 자아탐구의 시간이기도 했다. 제로버스의 탄생까지, 소통에 대해 깨우쳐가는 기나긴 여정을 담은 책인 셈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모두의 제각각일 모험의 영감이 되고, 동기가 되고, 용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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