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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06. 2023

'진짜'가 귀한 시대가 왔다.

진짜 이야기의 가치가 무섭게 상승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럼 이제 영어 같은 외국어는 배울 필요 없는 건가?', '이제까지 영어에 시간과 돈만 낭비한 셈인가?' 


이런 불안 섞인 질문이 터져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배워서 쓸모없는 지식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리 번역기능이 좋아진다 해도, 번역 없이 외국어로 아무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언제나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단지 이전과의 차이점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보다 인공지능과의 소통에 익숙해지는 것이 명백하게 효용이 좋은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외국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언어적 소통이다. 이제까지는 전문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컴퓨터와 대화를 해야 했는데, 이제는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 인공지능을 통해 컴퓨터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어 기계를 다루는 것에 접근성이 좋아졌다. 


인공지능의 원활하고 정확한 번역기능은 더욱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의 효율적인 소통을 돕는다. 그리고 완벽하게 외국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을 없애준다. 영어권 국가에 이민해서 거주할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면, 중급 정도의 영어실력이면 영어 구사자로서의 혜택을 다방면으로 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영어, 한국어, 시각적 언어, 그 외 부수적인 수단들로 징검다리를 만들며 지금까지 물살이 세게 요동치는 강을 건너느라 분투해 왔다. 와중에 등장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언어이자 도구는 보다 편안한 석조다리를 놓아주고 있다. 견디기 힘든 비바람은 여전히 자주 불어오겠지만, 우비로 바람막이로 막아가며 결국 뭍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운이 좋다면 목적지까지 닿는 성능 좋은 배에 탑승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AI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이미 많은 것을 바꾸어 가고 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비전을 AI에게 설명하고, 단계별로 AI에게 일을 시키고, 본인의 판단력과 안목으로 AI의 업무를 감독하고, 조언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AI가 재미있는 창의적인 작업을 도맡아 하고 인간이 부수적이고 지루한 잔업무들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 역시 상당하기에, 인간은 AI의 상사이자 인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이럴까? 작업물을 만들고 사용하고 팔기 위해 인간이 소비해야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AI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을 대체할 수 있는 업무 수행력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이 점을 위협으로 느끼거나 언짢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패기 넘치는 상상을 해보자면, 이는 단순히 대기업의 몰락으로 귀결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해 직원이 많은 회사를 대기업이라고들 하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점점 사람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과연 필요 자본이 훨씬 적어진 그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수익을 올려 이윤을 남기게 될까? AI와 함께 기업 모델이 예전과 전혀 달라져 버린다면, 지금 같은 의미의 대기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람보다는 비용 절감'이라는 방향으로 빠르게 기울수록 기업 모델의 변화 역시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폴란드의 한 글로벌 주류 기업은 AI를 사장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AI 사장은 연중무휴, 하루 24시간 업무를 보고, 모든 의견과 결정에 개인적 편견을 배제한다. 어지간한 인간보다 똑똑하고 말 잘 듣고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도 안 하고 처우에 불만도 없는 AI 직원이 싫은 오너가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기업에 고용되어할 만한 일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겠지만 다양한 계층,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기회가 열리는 분야는 역시 크리에이터, 또는 다른 형식의 1인 기업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AI와 함께라면 혼자서도 적은 자본으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나 연예인, 팔방미인들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이야기로 브랜드를 가지고자 하는 것이 점점 더 일반적인 일이 될 것이다. 당장 올해만 봐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혼자 제품을 만들고 온라인 브랜딩과 콘텐츠 마케팅을 시작하는 것이 정말 전례 없이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AI가 무엇이든 쉽게 만들어내고 어떤 이야기라도 지어낼 수 있는 세상. 유일하게 절대적으로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굴곡 있는 생을 살아내고 있는 자기 자신뿐이다. 퍼스널 브랜딩이라고도 불리며 점차 더 주목받고 있는 진정성 있는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나만의 차별점을 알리는 것이, AI가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기업 브랜드나 이미지보다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대기업에 몰렸던 자본과 힘은 그렇게 분산되기 시작할 것이다. "진짜" 이야기의 가치가 무섭게 상승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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