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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05. 2023

우리에 갇혀 있던 나를 구출한 인공지능.

언어의 제약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간다.

2022년 하반기, AI(인공지능)라는 단어가 점점 더 자주 들리던 무렵이었다. 회사 동료 D가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생성형 AI인 Midjourney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요즘 자주 듣기는 하는데 알아보지 않아서 잘 몰라." 


D는 최근 들어 Midjourney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데 재미있다며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AI라는 것을 다뤄보기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그 미지의 우주에서 유영중이다. 이제 고작 1년 정도 되었는데, AI의 존재감이 미미하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AI를 이용한 도구를 이것저것 사용해 보며 이 신기술이 향후 5-10년 안에 잠재적으로 닿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일지를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 나니, 나에게 AI가 어떤 의미와 기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었다. 크리에이터의 삶을 막연히 갈망하던 나에게 가장 특징적이고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작업 생산성과 번역이었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전업을 시도할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AI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생산성은 불가능하다 믿던 것들을 가능케 하는,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 혁신에서 비롯된다. 예전 같으면 제작에 수개월이 걸렸을 창작물도, 지금의 AI에게 적절한 프롬프트를 주면 1분 남짓한 시간에 크게 흠잡을 곳 없이 완성해 버린다. 발전 속도 역시 이전의 다른 신기술들에 비해 무척 빠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Midjourney는 불완전하고 어딘가 괴기스러운 그림을 뱉어내기 일쑤였기 때문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신기술의 가능성을 맛보게 해주는 흥미로운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교하고 심미적인, 완성도 있는 이미지를 제약 없이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에 따라 활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도구인 Midjourney와 Dall-E 등이 발전하는 동안, Runway, Pika Labs 등 텍스트 명령어로 이미지를 동영상으로 만들어주는 AI 도구들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이나 영상의 후보정 역시 많은 부분 텍스트 명령어로 간단하게 해낼 수 있다. 동영상 편집을 알아서 해주는 도구들, 이미지나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3D 모델이나 맵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튼튼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후년 정도에는 홀로 집에 가만히 앉아서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단편영화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아바타처럼 엄청난 영상미는 없더라도 유튜브 등에서 소비하는 콘텐츠로는 무리가 없을 것이고, 충분한 인기를 얻는다면 투자를 받아 진짜 영화로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토리와 아이디어는 지금까지와 같이 온전히 인간의 영역일까? ChatGPT와 같은 텍스트 기반 AI도구들은 인간의 비전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구상해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대본이나 책도 써준다. AI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콘텐츠나 여러 상품들을, 또 다른 AI로 마케팅과 세일즈까지 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육체노동이 아닌 지식 및 창작 산업의 경우, 어느 한 곳도 인간의 성역으로 남지 않는다. 


인터넷만큼, 혹은 그 이상의 커다란 기술 혁명이라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이렇게 우리의 일상과 업무 전반에 걸쳐 빠짐없이 영향을 미치고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여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구글 검색 없이 학교에 다니고 회사 업무를 하던 때를 지금 감히 상상도 해 볼 수 없듯이, 이제 곧 AI 없는 매일을 상상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여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던 내게 AI 기반의 챗봇인 ChatGPT의 등장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같았다. ChatGPT의 번역은 이제까지의 그 어떤 번역기와도 다르다. 맥락을 읽는 능력이 수준급이고, 두세 번 정도 서로 첨삭을 해주는 협업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무척 자연스러운 문장을 얻어낼 수 있다. 문장의 스타일도 목적에 따라 내 입맛에 맞게 즉각적으로 바꿔 쓸 수가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그 반대보다 효율이 좋은데, 그 역시 한국어가 모국어인 내게는 사용에 유리한 부분이다. 


가능성을 인지한 후 바로 ChatGPT 번역을 사용하여 콘텐츠를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한국어 콘텐츠를 완성한 후 길어야 20분 정도의 시간을 추가로 ChatGPT 번역에 투자하는 것으로 2개 국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문학 소설 수준의 글은 더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무리지만, 소셜 미디어 콘텐츠로는 충분하다. AI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도구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앞으로 정확도와 완성도는 점점 더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번역뿐만이 아니라 내가 처음부터 영어로 작성한 글의 첨삭도 ChatGPT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꽤나 자세히, 조목조목, 잘한 부분과 발전이 필요한 부분을 짚어준다. AI는 절대 완벽한 100% 정답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전문지식이 있는 제삼자의 의견을 듣고 선택 수용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훨씬 더 유용하다. 


제목으로 쓸 만한 마땅한 영어표현 등이 생각나지 않을 때 역시, 혼자 계속 끙끙댈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해 달라고 부탁하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마무리하면 훨씬 빨랐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어색한 표현이나 뉘앙스가 있는지 등도 확인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속 시원하고 든든하다. 언제나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조수와 선생님이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글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니 넘어야 할 관문으로는 말이 있었다. 글을 해결하는 동안 계속 궁리를 해보았지만 별 속 시원한 방법이 없었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 같지만, 현재까지 인스타그램에서 나의 삶과 가치, 콘텐츠에 공감하는 사람들 중 한국인의 비율은 절반이 훌쩍 넘는다. 앞으로도 나의 이야기는 세계인이 공감한다 해도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나 더 와닿고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의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으로 채널을 고정해 버린다면, 굳이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반대로 세계인과 소통하겠다며 다수의 한국인들 앞에서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굳이 한다면 그건 또 무슨 의미일까? 


두 개의 언어를 적당히 번갈아가며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일단 기술적으로 한국어를 할 때와 영어를 할 때 목소리 톤이나 태도 등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전혀 다른 언어고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이 항상 무척 달랐기 때문에 별 수가 없다. 둘을 부주의하게 섞음으로써 본의 아니게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져 신뢰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연습을 좀 하면서 말하는 스타일을 다듬어 봐야겠다 생각했지만, 내가 무슨 아이돌 마냥 모니터링을 거듭하며 연습해서 중견가수만큼 완벽해질 때까지 세상도 내 은행 잔고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잘못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좋을 것도 없다. 일단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영어 자막을 넣는 방법을 택하여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라이브 같은 실시간 소통 방식이 필요할 때엔 여전히 답이 없다.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따로 한 번씩 초대해야 할까? 그 두 그룹은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함께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방법이 없단 말인가? 




다행히도, 혹은 당연하게도, 번역을 둘러싼 이 모든 것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미국의 빅 테크 기업들 및 AI 스타트업들이 보다 효율적인 전 지구적 소통을 도울 AI 번역기능을 개발하고 있었고, 최근 들어 그 초기 모델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HeyGen에서 내놓은 음성번역 AI는, 모국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영상을 업로드하고 번역을 원하는 언어를 선택하면 번역된 언어로 이야기하는 영상을 입술 모양까지 맞춰서 1분여 만에 만들어준다. 이와 더불어 메타에서 얼마 전 발 빠르게 내놓은 SeamlessM4T라는 실시간 문자/음성 번역 모델에 거는 기대 역시 개인적으로 크다. 실시간 번역이 메타가 가진 모든 소셜 플랫폼과 앞으로 개발될 메타버스에 제대로 적용되는 날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콘텐츠 번역의 문제점과 해결법 따위는 쓸데없는 과거의 고민이 될 것이다.  


내가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던, 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게 될 것이고, 내가 어느 언어로 글을 쓰던 그들의 언어로 읽힐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처럼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언어의 번역에 엉성한 부분이 아예 없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실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류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어-영어를 실제 글을 쓰는 데에 쓸모 있는 수준으로 번역할 수 있는 번역기는 영원히 없을 줄만 알았지만, ChatGPT가 그 생각을 바꿨다. 상식이 쌓은 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면 곧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니, 어떤 방식으로 2개 국어를 사용해 소통을 해야 하나 밤낮으로 고민하던 것도 부질없게 느껴진다. 되는대로 하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되어 흘러갈 것이다. 


증강 현실, 메타버스와 더불어 삶의 방식이 변화하다 보면, 10년쯤 지나면 거주 계획이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굳이 배울 이유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 어학연수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할 이유 역시 점차 증발할 테고 말이다. 

이전 22화 꿈을 꾸려니 언어가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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