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선택을 강제할 때 추락하는 브랜드 신뢰도
최근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친구와 연극을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내부에 입장하니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공연 시간이 3시간 반이나 되었기에 물 한 병 사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지(Fiji) 생수를 팔더군요. 한 병 집어 계산하는데 가격이 $6.50으로 찍혔습니다.
이런 곳에서 뭘 사면 더 비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비싸다고 느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피지 생수의 정가는 대략 $2.30이고 그것도 생수치고 싼 가격은 아니거든요.
엄청나게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었음에도 공연 중 갈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야만 했던 귀한 500ml 물 한 병이었죠.
그런데 결국 연극이 끝날 때까지 다 마시지 못했습니다. 집에 싸 들고 와서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볼 때마다 가격이 생각나서 어쩐지 마시지 못했고, 결국 아직도 냉장고 안에 그대로 있네요.
말도 못하게 비싸다고 여겨진 생수 한 병이었기에, 그 가격이 저로 하여금 생수를 비논리적으로 소중하게 다루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높은 가격의 물건을 구매하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다시는 공연장에서 생수를 사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미리 챙겨 가면 되니까요.
그리고 생수를 쓸데없이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습니다. 뚜껑을 뜯은 플라스틱 병 안에 물을 오래 두면 박테리아가 번식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저는 결국 약 2달러만큼 남은 물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반적인 구매 경험에 녹아있는 브랜드 마케팅, 그에 연관된 소비자 심리는 한 번 짚어볼 만합니다:
1) 공포 마케팅 (Fear-based Marketing):
저는 평소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고, 3시간 반이나 공연을 보면서 물 한 모금 안 마실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연재해 상황과 비슷한 공포를 느꼈고,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가격임을 뻔히 알면서도 생수를 구입했습니다.
공포나 위협을 느껴 정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나온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게 되는 현상을 “공포 마케팅 (Fear-based Marketing)” 또는 “공포 가격 책정 (Fear Pricing)”이라고 합니다. 소비자가 어떤 두려움이나 위협을 느껴 정상적인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끔 하는 전략입니다.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합니다. “담배를 끊으면 건강해집니다.”라고 하는 금연 캠페인은 없습니다. 흡연으로 어떻게 건강을 잃게 되는지를 강조하고, 관련하여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비주얼을 사용하죠.
2) 점유 전략 (Captive Strategy):
공연장에는 물이라곤 오로지 피지(Fiji) 생수 브랜드뿐이었습니다. 비싸기로 유명한 에비앙(Evian)만큼이나 비싼 브랜드입니다. 폴란드 스프링(Poland Spring)처럼 대중적이고 가격도 족히 두 배는 더 저렴한 브랜드는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싸게 팔면서, 저렴한 생수를 선택할 선택권도 주지 않은 것이죠.
이렇게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가 특정 장소에서 독점적으로 제공되게끔 하여 소비자의 대안을 없애는 것을 점유 전략이라 합니다. 경쟁이 제한되니 공급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조성됩니다. 브랜드 광고 효과도 생기고요.
3)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생각 이상으로 비싼 가격에 생수 한 병을 구입하게 된 저는, 어쩐지 기분에 물을 마구 마시기가 아까워서 공연을 보면서도 아껴 마시게 되었습니다. 3분의 1 정도 물이 남아 있는 물병을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고이 넣어 놓았고 수 주가 지난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인지 부조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과 태도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태도를 변경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비싼 옷을 구입한 후 그 옷이 실제 가치에 비해 비쌌다고 느끼면, 비싼 지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옷의 가치를 되려 더 과대평가하여 소중히 여기고 특별한 날에만 입거나 아예 입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4) 소비자 불신 (Consumer Distrust), 평판 리스크 (Reputational Risk):
뜻하지 않게 물 한 병을 과도하게 비싸게 구입하게 된 저는 공연장의 이미지도 좋게 남겨올 수 없었고 피지(Fiji) 생수 브랜드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들이 소비자인 저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손상되는 평판 리스크와 그에 따른 소비자 불신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파급력이 더 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 버거킹에서 와퍼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했을 때, 와퍼의 오랜 팬이었던 저는 속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바쁜 일정 속에서 버거킹에 들러 와퍼를 사 먹었습니다.
공포 마케팅이자 노이즈 마케팅이었죠. 물론 와퍼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낚이는 기분이 싫어 불쾌했던 고객들이 많았고 그런 만큼 소비자 신뢰도가 하락하여 결국에는 브랜드가 사과문도 게시하게 되었죠.
물론 뉴욕 요즘 임대료 포함 전반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공연장 안에서 생수값이 비싼 것을 가지고 공연장을 너무 비난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경험이 생각보다 강렬하게 남았어요. 아직도 냉장고를 열 때마다 그 마시다 남은 생수병이 보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죠. 차마 마셔버리지를 못하는, 인지 부조화의 늪에 빠진 제 자신이 미련하지만 어쩔 수가 없고 말입니다.
이렇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풀어 하소연까지 마쳤으니, 이젠 생수병을 보내줄 때가 되었다고 (음?) 생각해 보려고 해요.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결국, 신뢰를 잃어버리는 브랜드는 되지 마시라는 겁니다.
싼 게 비지떡인 건 사실이지만, 제 경험에서처럼 공포를 조장하여 불합리하게 높은 가격으로 독점 강매시키는 구조 역시 그만큼의 가치를 하기 어렵습니다. 가치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스스로 가치를 느낀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게 등 떠밀려 구매를 강요당한다고 느끼게 되면 가치 역시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높은 가치를 소비자가 스스로 느끼고 믿고 원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멋진 브랜딩이고 마케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