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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민 Oct 26. 2024

여름을 추억하며 걷는 길

햇볕이 쨍쨍한 날을 사랑한다. 정수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강렬한  여름의 태양이 좋다. 얼굴에 생길지 모를 기미와 주근깨 잡티는 걱정되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좋다. 세상이 그늘지지 않도록  멀리까지 햇볕을 비추어 우울한 것은 모두  곳을 잃게 만들 것만 같다.  여름의 갑자기 쏴아 하고 쏟아지는 , 비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흙냄새. 축축한 것들을 바싹 말려버리는 한낮의 여름을 사랑한다.


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걷는 걸 즐기는 않는 나라도 동네 두어 바퀴는 기분 좋게 거닐 수 있다. 그 길에 마음에 드는 맥줏집이라도 발견한다면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돌아올 수도 있겠다. 가벼운 옷차림만큼이나 가벼운 지는 마음. 이렇게 더울 때는 시원한 그늘과 아이스커피 한 잔이면 충분히 행복하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이 좋다. “더워 더워” 하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서늘한 에어컨 바람에 얇은 겉옷을 껴입는다. 바깥은 여름인데, 실내는 선선한 가을이다. 냉방비는 걱정이지만 시원하니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진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장바구니에 넣어둔 원피스를 삭제한다.


여름휴가는 좋지만 싫다. 일 년 중 가장 손꼽는 날이지만 여름휴가가 끝나면 연달아 쉬는 날이 없고, 이 계절도 정점을 찍었으니 서서히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기에 온전히 좋아할 수 없다. 가을도 좋지만 여름에 비할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조금만 걸어도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방금 씻고 나왔는데도 팔은 금세 땀으로 끈적해진다. 그쯤은 물티슈로 슥슥 닦거나 물로 씻어내면 되니 여름에 대한 애정은 꺾이지 않는다.


매일 햇빛 축제를 벌이고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어쩐지 피부가 까매 보이고 손등에도 기미가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내일은 양산을 꼭 챙겨야지’ 하면서 서둘러 손과 얼굴에 화이트세럼을 듬뿍 바른다. 양산을 들고 다니는 건 귀찮지만, 햇볕을 가리기에는 그만이다. 아무리 여름이 좋아도 기미와 주근깨까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미리 선케어 화장품을 챙겨 바르는 편이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나뭇잎을 물들이는 가을이 가고, 겨울은 서서히 저물어 가고, 벚꽃이 휘날리는 봄이 오고 나면, 온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일 여름도 곧 오겠지. ‘내년 여름은 비가 적당히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아직 다 지나지 않은 여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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