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낯선 빨간 간판을 보게 됐다. 한복집이었던 그곳은 어느새 빨간 간판에 노란 글씨로 ‘신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학원이 많은 건물이었는데 ‘점집이 들어와도 되나’라고 생각하다가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이 갑갑한 일이 있을 때 들를 수도 있겠다’로 생각이 번졌다. 나는 신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떨지 궁금했다. ‘음. 한 번 가볼까’라고 생각한 게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무튼, 할머니>를 읽다가 흠칫 놀랐다. 아무튼 시리즈는 나도 몇 권쯤은 읽어서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연보랏빛 글씨에 흩날리는 꽃이 아름다워 읽게 됐다. 첫 장에서 이 책의 지은이 신승은 작가가 신점을 보러 간 이야기가 나온다. ‘오! 세상에.’ 작가도 신점 같은 걸 본 적이 없었는데, 계속해서 힘든 일이 겪으며 친구들을 따라 보러 갔다는 이야기. 그곳에서 ‘신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가 생각나 펑펑 울었다는 작가다. (신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윗대에 무당이었던 사람이 있다고 하는 걸로 봐서 핏줄 같은 개념인 것 같았다.) 놀랍게도 점집에서 2시간을 넘게 울며 점을 보며 나왔다고 하는데 몇 달 후 점쟁이가 말한 대로 계약을 하게 됐다고 한다. 용한 점쟁이였나 보다.
책까지 읽으니 점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점을 보러 갈 만큼 궁금한 건 없지만, 가까이에 있으니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 “우리 회사 근처에 점집이 생겼던데 한 번 가볼까?”라고 하자, “아서라. 혼자서 거기 갈 생각도 하지 마라”라고 아주 강경하게 말했다. 친구의 기세에 눌리고 했고 혼자 갈 용기는 없었다. 점쟁이가 나를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혼자 가기에는 무섭다.
유독 꿈이나 촉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책에서도 작가의 할머니가 감이 좋으셨다고 하는데 내 곁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 답답한 일이 생기면 친구랑 수다 떠는 것으로 갑갑함을 털어내곤 했는데, 어떤 사람을 보다 적극적으로 점을 보러 가기도 하나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다닌 여러 회사 중 출퇴근 길이 예뻐서 퇴사할 때까지 좋은 감정으로 다닌 곳이다. 그곳 이사님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때론 냉정한 사람이었는데,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면 꼭 점을 보러 갔다고 한다. 면접을 총 두 번에 거쳐 봤는데 두 번째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 경영지원팀에서 전화가 왔다. 생년월일이 이력서에 낸 것과 일치하는지, 음력인지 양력인지 물었다. "왜 물어볼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러려니 했다. 입사하고 일 년쯤 지났을까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 생년월일을 왜 확인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그 후로도 회사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거나 계약이 있을 때면 점을 보러 간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뭐든지 알아서 척척 다할 것 같은 이사님이 점을 보러 가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점집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지만, 혼자 가기엔 무섭고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가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아직 무언가를 처음으로 경험할 때 든든한 친구가 함께이길 바라는 겁쟁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