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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민 Oct 26. 2024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걷는 길

편지를 써준다고 했다.  편지를 받아본  너무 오래되어 나는 냉큼 주소를 불렀다. 그리고선 매일같이 편지를 기다렸다 ‘혹시 내가 놓쳤나’, ‘다른 택배 사이에 껴있는  아닐까하며 출근길, 우편물이 오는 오후쯤이면  번씩 회사 우편물 보관함을 들여다봤다.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혼자 설레다 실망하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했다.


편지를 보낸다고 한 사람이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야 편지를 다 썼노라고. 내일이면 보낼 예정이라고. 나는 혹시 편지가 잘못 배달된 게 아닐까 했는데 우리나라 우체국에서 그럴 리 없었다. 한동안 기다린 편지를 곧 받게 된다니 다시 설렌다.


나에게 손 편지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것인데, 어릴 적 엄마는 집을 비우실 때면 삶은 감자와 함께 손 편지를 써놓으셨다. 삶아 놓은 감자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는 엄마의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주로 감자 먹고 숙제하고 있으면 엄마가 볼일을 마치고 곧 온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감자가 대신할 순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나는 엄마표 감자면 서글픈 마음 없이 엄마를 기다릴 수 있었다. 대체로 엄마의 감자는 따뜻했다. 상온의 감자가 따뜻하려면 가기 직전에 삶아내야 하는데 딸에게 따끈한 걸 먹이려는 엄마의 사랑이겠다.


엄마의 편지 외에도 6학년 어린이날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엽서를 써주셨다. 엽서를 나눠주시며 마지막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려고 쓰셨다고 했는데, 나는 그 뒤로도 몇 년간 더 어린이날을 챙겨 받았다.

선생님의 엽서는 “가녀린 몸을 가진…”으로 시작했다. 내가 가녀렸던 마지막 순간이 선생님의 편지 속에 담겨있다. 그 외에는 청소도 열심,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한 어린이라는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썼을 법한 내용이었지만, 서두만큼은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나에게 편지는 추억이자 애틋한 사랑이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때 스물 통가량의 편지를 받았었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우리의 한때가 고스란히 그려진다. 나는 결혼하고서도 몇 통의 편지를 썼는데 돌아오는 답장은 아직 한 통도 없다. 수신오류가 생긴 모양이다.

손 편지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의 마음이 한 문장 한 문장 담기는데, 나를 향한 마음이 가득 담긴 그것을 손에 들고 있자면 마음 한쪽이 간질간질하다. 편지를 써준다는 그녀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의 간지럼을 느끼게 되겠지. 어서 편지가 도착하길 바라며 나는 다시 회사 우편함을 두리번두리번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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