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써준다고 했다. 손 편지를 받아본 지 너무 오래되어 나는 냉큼 주소를 불렀다. 그리고선 매일같이 편지를 기다렸다 ‘혹시 내가 놓쳤나’, ‘다른 택배 사이에 껴있는 건 아닐까’ 하며 출근길, 우편물이 오는 오후쯤이면 몇 번씩 회사 우편물 보관함을 들여다봤다.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혼자 설레다 실망하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했다.
편지를 보낸다고 한 사람이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야 편지를 다 썼노라고. 내일이면 보낼 예정이라고. 나는 혹시 편지가 잘못 배달된 게 아닐까 했는데 우리나라 우체국에서 그럴 리 없었다. 한동안 기다린 편지를 곧 받게 된다니 다시 설렌다.
나에게 손 편지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것인데, 어릴 적 엄마는 집을 비우실 때면 삶은 감자와 함께 손 편지를 써놓으셨다. 삶아 놓은 감자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는 엄마의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주로 감자 먹고 숙제하고 있으면 엄마가 볼일을 마치고 곧 온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감자가 대신할 순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나는 엄마표 감자면 서글픈 마음 없이 엄마를 기다릴 수 있었다. 대체로 엄마의 감자는 따뜻했다. 상온의 감자가 따뜻하려면 가기 직전에 삶아내야 하는데 딸에게 따끈한 걸 먹이려는 엄마의 사랑이겠다.
엄마의 편지 외에도 6학년 어린이날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엽서를 써주셨다. 엽서를 나눠주시며 마지막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려고 쓰셨다고 했는데, 나는 그 뒤로도 몇 년간 더 어린이날을 챙겨 받았다.
선생님의 엽서는 “가녀린 몸을 가진…”으로 시작했다. 내가 가녀렸던 마지막 순간이 선생님의 편지 속에 담겨있다. 그 외에는 청소도 열심,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한 어린이라는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썼을 법한 내용이었지만, 서두만큼은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나에게 편지는 추억이자 애틋한 사랑이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때 스물 통가량의 편지를 받았었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우리의 한때가 고스란히 그려진다. 나는 결혼하고서도 몇 통의 편지를 썼는데 돌아오는 답장은 아직 한 통도 없다. 수신오류가 생긴 모양이다.
손 편지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의 마음이 한 문장 한 문장 담기는데, 나를 향한 마음이 가득 담긴 그것을 손에 들고 있자면 마음 한쪽이 간질간질하다. 편지를 써준다는 그녀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의 간지럼을 느끼게 되겠지. 어서 편지가 도착하길 바라며 나는 다시 회사 우편함을 두리번두리번거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