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연년생 언니가 한 명 있다. 나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시크하고 냉정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도 마음은 여려서 슬픈 드라마를 보면 꼭 눈물을 펑펑 쏟는 울보다. 눈물이 많은 언니는 어릴 때부터 작고 가냘팠다. 그런데도 당차고 다부져서 “한 살 차이라도 언니는 언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린 시절 나와 신호등을 건널 때면 손을 꼭 잡고 건너고, 잔소리도 제법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같이 놀아달라고 떼를 쓰거나 언니와 함께 가겠다고 투정 부리던 순간이 대부분이다. 언니가 어디를 갈 때면 언니를 참 잘 따르던 동생이었다. 그 외 모든 순간은 언니를 이겨먹으려고 대들다가 언니에게 맞고서 분에 못 이겨 울거나 엄마에게 혼이 났다. 크면서는 말도 못 하게 싸웠지만, 점점 친한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아마도 언니가 나의 어리광과 생떼를 잘 받아줘서 아닐까. 어릴 때부터 언니보다 덩치가 커서 짐은 내가 주로 들었으니 짐꾼처럼 생각했으려나.
나의 세 번의 해외여행 동행자는 모두 언니였다. 계획형인 언니는 숙소는 물론 관광지와 맛집 동선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체력을 고려해서 건너뛰어도 되는 곳과 꼭 가야 할 곳을 정해서 일정을 짰다. 그와 달리 숙소와 갈 곳만 정하면 끝인 나와는 여행 전부터 티격태격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사이가 좋아졌다. 그런 언니와 해외여행은 늘 즐거웠다. 타지에서 잠을 못 자는 언니는 여행 내내 퀭했지만, 아빠에게 물려받은 근면성실함으로 여행도 아주 성실하게 열심히 보고 먹고 다녔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사줄게
한 번은 대만의 지우펀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우린 버스 투어를 했는데, 가이드가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어볼 것을 권하며 “아이스크림을 안 드시는 분도 다들 좋아하시더라 드셔보시면 만족하실 거다”라고 해서 마음속으로 꼭 먹어야지 했는데 언니는 맛만 보면 된다며 두 개를 시키자는 나를 말리고 하나만 주문했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사줄게”라는 말과 함께. 한 입 먹었더니 역시나 정말 맛있었다. 나는 원래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좋아한다. 나와 달리 언니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입만 먹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언니의 한입은 컸고, 땅콩 아이스크림은 작았다. 그 사이 줄은 길어졌고 주어진 자유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아이스크림을 포기하는 게 맞았다. 그 후로 나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 것에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언니는 지우펀은 꼭 다시 한번 더 가자며 그땐 땅콩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땅콩 아이스크림만 놓고 보면 내가 언니 말을 잘 듣는 동생 같지만, 실은 언니 약 올리는 일에 언제나 진심이다. 언니 몰래 가방에 내 짐을 넣어놓기도 하고, 화장품을 사면 몰래 바르기도 하고, 언니가 아끼는 향수를 데이트 때면 착착착 뿌려 향기샤워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 쇼핑에서 산 옷이 작으면 언니한테 보내고는 억지로 돈을 받아 낸다.
최근 가족 여행 때는 니트를 맞춰 입기로 했다. (이유는 내가 갑자기 니트가 좋아져서 더워지는 날씨에 맞춰 반팔니트가 필요해서였다.) 고르고 골라 옷을 두 벌 샀는데 나한테 좀 작은 듯했다. 그래서 언니한테 연락을 했더니 어쩐 일인지 받질 않았다. 메시지에도 답이 없자 ‘내가 강매할 줄 알고 피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필라테스 중이었다는 언니의 말에 “나랑 같은 니트 입지 않겠느냐”며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냈다. 언니는 하나씩 나눠 입자고 했다. “나는 안 된다”라고 두 개 다 입어야 한다고 했더니 언니는 “왜?”라고 묻더니 곧이어 “옷 너한테 작구나. 어쩐지 전화를 했더라”하면서 웃었다. 언니는 나에게서 옷을 두 개 다 구매했고, 손빨래해 준 값으로 제값보다 돈을 더 얹어주었다. 역시 우리 언니는 천사다. 덕분에 가족여행에 나와 언니는 쌍둥이처럼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