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요약될 수 없는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by 무하

어느새 수능 날이 지나갔다. 나는 수능을 본 지 꽤 되었고, 가까운 주변에도 수능을 치는 사람이 없어 별 감흥이 없었다. 수능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 고등학생 시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능 날도 당일 허둥댔던 것 빼고는 두루뭉술하게 밖에 기억이 안 난다. 사실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img.jpg Copyright: Moyan Brenn


내 고등학교 생활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를 많이 했고, 잘했다. 살이 16kg 쪘다.

예상치 못하게 첫 모의고사 때 학교에서 1등을 하게 되었고, 그 등수를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내 자아는 전교 1등이었고 공부는 나의 자아실현이었다. 원래 먹을 것을 좋아했던 나는 공부를 위해 내 머리와 입에 달달한 간식들을 때려 넣었다. 살이 많이 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 내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했을 때 떠오른 생각은 분노, 좌절감이었다. 그때를 상실의 시간이라고 기억했다. 나의 생각, 나의 관계, 나의 관심사, 나의 도전, 나의 반짝이는 것들이 공부라는 거대한 흙더미로 덮여 “다음에” 카테고리로 미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있다. 공부 하나만 해도 그렇다. 내신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문제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불안해했던 마음도 있었고, 수학 공부를 하며 다양한 문제풀이 방식들을 적용할 때 적과 싸우기 위해 다양한 무기를 이용한다는 상상을 하며 느낀 즐거움, 모의고사를 망쳤을 때 느꼈던 절망, 시험 점수가 잘 나왔을 때의 안도 등 여러 색채의 기분과 마음들이 있었다.

공부 외에 다른 추억들도 아른아른 생각이 났다. 체육부장을 맡았고, 체육대회의 여러 종목들을 나갔다. 생명과학 동아리의 회장이 되어 여러 가지 과학실험을 하며 성공적으로 동아리를 이끌었다. 반의 합창대회 준비를 재밌게 참여했다. 몇 안 되었지만 친구들도 사귀었다. 기숙사에서 불닭볶음면을 먹었다. 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 쉬는 시간에 학교 주변을 달렸고, 운동장에서 고개를 올려 수많은 별들을 보았다.




위의 요약된 문장 두 개로는 내 구체적인 고등학교 이야기들을 전혀 담지 못한다. 내가 왜 공부에 그렇게 매달렸는지, 왜 그렇게 살이 쪘는지, 공부 말고 다른 추억들은 없었는지 그 무엇도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한 저 두 문장으로 고등학교 때를 기억하고 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이전에 읽었던 인문학에 관한 책에서, 소설 줄거리 요약으로는 그 인물의 서사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떠올리고, 그 내용을 세 문장으로 요약해 보자. 그러면 인물들은 납작해지고, 인물 간의 관계는 뻔해진다. 어떤 사건이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지만, 인물들이 그 사건들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사람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누가 ~했대” “누가 어떻더라” 남에게 듣는 말은 이야기 주인공의 맥락을 댕강 잘라내고 흥미 요소만 남긴다. 일시적인 재미는 줄 수 있지만, 그 사람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다. 오직 상대를 실제로 보고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아름답다의 어원 가설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를 뜻하는 [아람]에다가 답다 라는 조어가 붙어 아람-답다, 이후 아름답다 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두 번째는 앎, 알음에 답다를 합쳐져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두 가지 다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난 두 번째 가설을 좀 더 좋아한다. 우리는 알 때, 아름답다고 느낀다. 사람을 하나의 선이 아닌 면으로, 면이 아닌 입체로 이해할 때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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