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질병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매일매일 환자를 보다 보면 질병이 급성 질환과 만성 질환으로 크게 갈린다. 감기, 복통 등 급성 질환들은 위험한 증상들은 없는지 살펴보고 약을 처방하면 금방 낫는다. 만성 질환은 좀 더 어렵다. 혈관 질환인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부터 합병증인 당뇨발 심부전, 근골격계 질환인 척추관 협착증, 골다공증 등 다양한 질환들이 환자들을 괴롭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완치되지 않고 껌딱지처럼 환자에게 붙어있다는 것이다. 생활습관에 정말 많은 변화를 주면 이런 질환이 나아질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유전적 요인이나 노화로 인해 병 자체를 뿌리 뽑기 어렵다.
만성질환은 삶에 끈덕진 영향을 주지만, 반드시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질병은 어떤 때는 속을 썩이고, 때로는 자신의 건강과 삶을 관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의사는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환자의 코치가 되어 같이 2인 3각을 뛴다. 환자와 의사가 같이 호흡을 맞추어 질환을 관리할 때, 만성질환은 자신을 해치는 병이 아닌 자신이 가진 좀 귀찮은 특징이 된다. 질병과 같이 지내다 보면 질병은 자신을 구성하는 영역 중 하나로 들어온다. 환자는 질환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게 된다.
질병, 특히 만성질환을 진료하다 보면 아픔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몸은 쇠나 톱니바퀴가 아닌 피부, 근육, 신경, 혈관 등 다양한 구성체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성 성분들이 모여서 단순 집합체가 아닌 생명, 더 나아가 인지와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복잡하고 오묘한 신체가 제각기 역할을 하며 돌아가지만,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병균 등 외부 자극 등으로 인해 균형이 깨지기도 하고, 우리 몸이 노화해 가며 생기는 문제들도 있다. 몸은 외부의 침투와 내부의 마모에 대응하기도 하고, 적응하기도 한다. 우리 대장에 유산균을 포함한 다양한 균들이 상재하는 것처럼, 질병은 우리 몸과 공존한다.
사람마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다 다르다. 질병이 없는 몸을 건강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질병과 함께 잘 살아가는 몸을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건강은 자신이 만든다. 그러나 유전적인 것처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사회 및 환경적인 문제로 건강이 침해되는 경우도 있다. 질병의 유무는 온전히 개인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질병이 있는 몸이 잘못된 몸은 아니며, 애초에 잘못된 몸이란 없다. 우리 몸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사람을 담는 고유한 그릇이며, 동시에 사람의 정신과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역동적인 유기체이다.
그렇기에 사회가 구성원들을 위한다는 것은 구성원이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누구나 아플 수 있으며, 질병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아파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쳐주는 사회가 튼튼하고 따뜻한 사회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사보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의 과다 이용, 의료비 부담 증가 등 실비보험의 다양한 폐해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몸과 건강이 평가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은 보험 가입비가 오르고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 지며, 수술을 받았던 등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입이 거절된다. 사보험은, 바꿀 수 없는 환자의 일부분을 부정한다. 마치 양을 관리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사람만 보험의 울타리 안쪽에 두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까다롭게 굴거나 울타리 밖으로 내쫓는다.
의료는 특별한 서비스가 아닌, 당연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질환으로 사람을 가리는 의료적 시스템은 차별적이며, 거절당하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순적이다. 아픈 사람들, 더 보호막이 필요한 사람들을 제쳐두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또다른 보호막을 판매한다. 사보험, 실비 보험은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정작 그 대상인 사람들은 변두리에 둔다. 사보험은 ‘시민’ 을 모른다. 고객만이 있을 뿐이다. 평가에서 합격한 고객은 문을 통과시키며, 탈락한 고객에게는 문을 닫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에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없지만, 사람 중심적이 아닌 체제 중심인 복지 시스템으로 인해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한다. 그는 그 시스템에 맞서 계속 싸워 나간다. 마지막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돌봄의 대상이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의료는 몸을 위해, 건강을 위해, 사람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건강보험은 모두를 대상으로, 가능한 많은 질환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 누구도 빠뜨리지 않는 보험, 국민건강보험이 사람들의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 줄 때, 사람들과 사회는 더 건강한 곳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