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나를 그리다
최근 휴무날에 시간이 남아서 서울시미술관을 갔다. 세 가지 정도의 전시를 보았다.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천경자 화가의 전시였다. 서울시미술관에 화가의 유족들이 작품을 기증했고, 미술관에서는 작품들을 바꿔가며 상설 전시를 하고 있었다. 도슨트 해설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 그림들을 봤다. 그냥 뱀과 여성들, 그리고 여행의 그림들이었다. ‘역시, 나는 그림에 조예가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림들이었고, 빤히 바라봐도 별 것 없었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도슨트의 해설 속에 살아 움직였다.
천경자 작가는, 그림을 통해 다양한 것들을 표현했다. <생태>라는 똬리 튼 여러 마리 뱀들을 통해 어려운 시기의 자신의 똘똘 뭉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아픔, 그러나 그것을 놓아두고 난 후의 평온함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들은 처절함, 아픔, 기쁨, 숙연함, 불안함, 평온함 등 다양한 마음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설이 끝난 후, 다시 한번 그림들을 둘러봤다. 그림들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세밀한 디테일들을 보기도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기도 하면서, 그림을 즐길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림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림들을 소개하는 앱을 깔아서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글, 만화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한 폭이라는 그 작은 공간 안에, 여러 표현들이 있었다. 표현 방식들도 다 달랐다. 그중 빛의 다양한 빛깔을 표현한 인상주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도 그쪽 그림들이 예뻐서 좋아했고, 지금 다시 보니 그 세세한 빛의 표현, 뭉갠 듯 아닌 듯한 작화가 마음에 들었다. 일렁이는 물체들의 흐름을 보며 내 마음도 빛들에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심란한 어제였다. 글로 내 마음을 적어 내려 갔지만, 이 끓어오르는 마음, 이리저리 부닥치는 마음을 다 표현하기에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랑 맨날 카톡으로 얘기하며 월급루팡을 짬짬이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스스로를 ‘예술놈’이라 부르며, 다양한 표현을 하는 미술가 친구이다. 그 친구가 말했다. 무언가를 그려보라고. 슥슥 다양한 재료로 칠하다 보면, 스스로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실행력이 빠르다.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집으로 갔다. 집에는 이전에 그림을 그렸던 색연필 도구가 있었다. 중학교 때도 그리는 것을 많이 좋아했고, 대학 때도 그림을 그렸던 때가 있었다. 다만 그 그림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고, 그렇기에 잘 그린 보기 좋은 그림이어야 했다. 대학교 때는 주로 동물들이나 풍경을 따라 그렸다. 색연필 온라인 강의를 듣기도 했지만, 몇 강의 못 듣고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이번에는, 온전히 나를 위한 그림을 그렸다. 보여주겠다는 부담 없이, 그냥 자유롭게 그렸다. 눈을 그리기도 하고, 내 마음속의 유령을 그리기도 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림 내의 것들은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의 서사를 만들었다. 신기했다. 사각사각 색연필이 종이에 그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오일 성분인 유성 색연필로 그려서, 그 자체로 두껍게 말리는 느낌이 났다. 그림 하나하나는 강렬했다. 마음에 무언가가 그림을 통해 종이로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글쓰기와는 또 다른 경험, 나에 대한 표현이었다.
최근 이러한 일들로 미술은 나에게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왔다. 쉬는 날 전시회에 가서 미술 작품을 더 보고 싶다. 그리고 내 마음들을 자꾸 그려나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나 자신과 대화한다. 아직 어려운 나와의 관계 맺기를, 글쓰기와 그림으로 자꾸 해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