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같은 글을 나누고 싶다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소했다. 진료 시간 짬짬이 공부 외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일기와 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 쓰는 카톡방에 참여하여 매일 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쓰며 글쓰기에 재미가 붙었다. 글은 쉽게쉽게 쓰였다. 사람들에게서 글을 잘 쓴다고 칭찬받았고, 인정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브런치 작가도 되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기사를 쓴 것도 통과가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밌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로 글이 예전만큼 잘 쓰이지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흘러나오던 글이 빨리빨리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글을 왜 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중 톨스토이의 ‘인생에서 공부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잠언집을 읽었다. 톨스토이는 겸손할 것, 기다릴 것, 말을 많이 하지 말 것 등을 조언했다. 특히 사랑을 사람의 가장 큰 능력으로 정의하고 이를 항상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사랑이란 말이 참 크고 어렵게 느껴졌다. 남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은 고매한 성자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내 방식대로 사랑을 정의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 사랑이란, 다른 사람과의 끈끈한, 서로 살피고 돌보고 신경 쓰는 관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랑이란 말이 좀 더 쉽게 와닿았다.
그리고 글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하고 싶다. 내 회사에서 이사님이 우리 직원들을 위해 매일 점심을 해 주시듯, 나도 읽고 나면 잘 읽었다, 마음이 든든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재작년, 작년 2년간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살고 싶어 사는 삶이 아닌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았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마음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해왔다. 올 해는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해였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었다.
일은 나에게 역할을 줌으로써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뿌듯함과 내가 필요하다는 자기효능감을 가지게 했다. 일터에서 사람들과 소소하게 생각과 감정들을 나누며 쌓은 관계는 외로웠던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로고테라피), 에리히 프롬의 책들은 나의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무엇을 좇아 나아갈 것인가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다고 지난 2년의 시간이 나에게 마냥 나쁜 것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 시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나는 나아지기 위해, 나를 아프게 하는 생각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주변의 도움을 구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의 아픔들과 대면하고, 나를 미워하는 거미줄 같은 마음을 걷어냈다. 그러면서 내 마음 근육도 자랐다. 지금은 그 시간을 무사히 빠져나왔고, 그 시간들은 나에게 든든한 발판이 되었다. 내가 스스로 고난을 이겨냈다는 생각은 내 자아존중감의 구성 요소이다. 이 시기를 견딘 내가 참 대견하고, 내가 봐도 이건 인정한다! 싶다.
나는 지금 느끼는 즐거움이 정말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가 닥쳐와도 괜찮다. 희망은 고통에서 의미를 찾는 데 있다고 빅터 프랭클이 그랬던 것처럼, 그 고통 또한 나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줄 것이다. 어떤 것이 나에게 오든지, 나는 그것을 감사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앞으로도 일하며, 사랑하며, 읽고 쓰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나를 치유하고 좋은 것을 주듯, 남들에게도 의미 있고 좋은 것들을 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아픈 지점들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보듬어 줄 때, 이 아픔들은 녹아내린다. 내 글이 남들에게 위안을 주는 따뜻한 밥 같은 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