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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Oct 02. 2023

과민해도 괜찮아

진료창에 [피부 문제] 를 증상으로 한 환자가 떴다. 56세 남성이었다. 

“안녕하세요, 피부 문제가 있다고 하셨네요. 뭐가 났나요?”

“선생님, 저 온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어요. 너무 가려워요.”

환자가 팔을 보여줬다. 넓고 붉은 두드러기가 여럿 올라와 있었다. 환자가 상의 밑끝을 살짝 올리니 배에도 두드러기가 퍼져 있었다. 

“팔 뿐만 아니라 다리, 배 다 올라왔어요.”

“아이고, 심하네요. 많이 가려웠겠어요.”

“말도 마세요. 아주 가려워 죽겠어요. 선생님 주사 맞으면 안 될까요?”

“네, 주사도 맞고, 약도 당분간 먹어야겠어요. 두드러기 부위가 넓으니 바를 수 있는 약한 스테로이드 로션도 드릴게요. 3일 후에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3일 후, 환자가 다시 왔다. 설마 안 나아서 다시 오신 건가? 나는 마음을 졸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정식 님, 두드러기는 좀 나았나요?”

“아, 많이 나아졌어요. 감사합니다.”

휴, 내가 또 한 건 잘 했구나. 


두드러기 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등 여러 가지 질환이 알레르기로 인해 생긴다. 알레르기는 우리 몸에 거의 해를 일으키지 않는 물질을 향해 몸이 과민하게 대응하는 현상이다. 몸은 면역 체계를 통해 외부 물질에 대응한다. 따라서 알레르기 반응에서도 면역 체계의 활성화, 즉 염증반응이 일어난다. 염증은 여러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코가 부어오르고 마구 콧물을 내뿜는 경우 알레르기 비염이 되며, 피부가 붉게 부어오르고 가려운 경우는 두드러기와 아토피가 된다. 알레르기는 참 알쏭달쏭하다. 예방접종도 없고, 완치하기도 쉽지 않다.


알레르기 질환을 보며 사람의 마음에도 알레르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톡 건드리기만 해도 불처럼 화르륵 반응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다. 그러한 부분은 각자 달라서,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니어도 나에게는 유독 큰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구는 외로움을 사무치게 싫어하고, 누구는 시끌벅적한 환경을 싫어한다. 신체의 알레르기처럼 마음의 알레르기도 참 다양하다. 


신체의 알레르기 치료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증상치료로, 알레르기의 원인을 회피하고 증상이 올라왔을 때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제 등 염증반응을 낮춰주는 약물을 쓰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면역 치료로, 주로 알레르기 비염에 쓰인다. 알레르기 원인 물질을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주사나 약물로 투여하여 정상적인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바꾸는 방법이다. 면역치료는 약 3~5년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 몸의 기초 설정을 바꾸는 작업이다. 


나는 내 마음에 있어 면역치료, 즉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꼭 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나는 지금까지 덜 괴롭고 더 살 만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바꿨다. 나는 믿었다. 앞으로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편, 이 믿음은 ‘나는 괜찮지 않다’를 전제로 깔고 있었다. 나는 분명한 단점이 있다. 나는 괜찮지 않다. 나는 바뀌어야 한다. 


최근에 한 사건으로 인해 내 견해가 좀 바뀌었다. 퇴근을 하다 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지인을 우연히 만나 같이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했고, 그가 이유를 물어봤다. 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저는 고치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어요. 외모에 대한 열등감, 공격성, 그리고 식탐이에요.”

“왜 스스로가 공격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가끔씩 욱 하는 기분이 올라올 때도 있고, 친구에게도 화가 나는 때도 있어요. 기분이 과민할 때도 있고요.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에요. 대학생 초반 때 제가 살던 곳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타야 했어요. 버스터미널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는데 늦게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 버스기사에게 눈치를 줬어요. 한숨을 푹푹 쉬면서요. 언제는 지하철에서 누가 제 발을 밟았는데, 하필이면 그날 하얀 운동화를 신었어요. 그냥 웃으며 넘어갈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사람에게 불편한 티를 냈어요. ”

“그런 상황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했나요?”

“그러진 않았고, 화가 많이 났다는 기억이 남아요.”


그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 생각에, 무하씨는 공격적이라기보다는 예민하고 섬세한 특징이 있는 것 아닐까요? 버스에서 어릴 때의 무하씨가 얼마나 마음 졸이는 상태였겠어요. 그렇다고 막 화를 표출하지도 못하고, 소심하게 눈총을 주었던 것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잖아요.”

나는 내가 공격성이 있다고, 따라서 고쳐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내 믿음을 흔들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잘못된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다. 공격적인 성격이라기보다 조금 예민한 성격일 수 있겠다. 

“오히려 무하 씨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더 많이 있는 듯해요. 뻔뻔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이러한 고민들을 마음 속에 꽁꽁 싸매두고 있죠.”

“듣고 보니 좀 생각이 바뀌네요. 저는 그동안 제가 고쳐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스스로를 알아가고 인정하는 게 필요할 수 있겠네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사람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예요. 자신을 꼭 고친다기보다는, 자신을 알고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 되고 싶은지 그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


그 후로 자꾸 그 대화를 곱씹었다. 내 성격보다는 내 성격을 문제삼는 나의 엄격한 시선이 더 문제가 아닐까. 그 아래에서 내가 많이 괴로워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열등감과 공격성과 식탐이 있는 사람보다는 세심하고 가끔 예민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를 보니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같았다. 나를 들여다보니 교정보다는 인정과 사랑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이 보였다.

알레르기는 불편하다. 그러나 모든 알레르기가 완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의 알레르기도 적당히 조절하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마음의 알레르기는, 그 사람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이다. 뿌리뽑아야 하는 악이 아닌 알아가며 필요할 때 감정을 조절하는 연약한 부분이다. 내 알레르기는 있는 그대로 괜찮았다. 알고 보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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