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의원에서 청소년센터와 중학생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 사업을 진행했다. 마음 건강, 성 건강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뤘고, 나는 그 중 신체 건강을 강의했다. 강의를 학생들의 건강 체크와 간단한 수업으로 구성했다. 학생들이 근육, 지방, 수분 등의 체성분을 분석하는 인바디를 진행한 후 나에게 가져온다. 나는 학생들의 혈압과 혈당을 재고, 그 결과를 기준으로 학생들에게 간단한 상담을 해준다.
“학생은 전체적으로 다 좋네요. 인바디도 좋고, 혈압과 혈당도 정상이에요.”
“그래요? 앗싸, 감사합니다.”
결과 수치가 모두 건강 범위에 있는 학생들은 다 좋다고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간다. 비만에 속한, 특히 그중 혈압이 높은 학생들에게는 말을 좀 더 조심히 골랐다.
“학생은 지금 체중이 좀 있네요. 혈압도 조금 높은 편인데, 운동과 식사 관리가 도움이 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봅시다.”
“네, 선생님.”
무심하게 살을 빼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이전의 어릴 때를 제외한 거의 한평생을 과체중과 비만의 사이에서 살아오며 체형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비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내가 체중감량에 대해 마음 편히 얘기했을 것 같다. 그러나 비만은 체중과 허리둘레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비만에는 편견과 낙인이 따른다. 초등학교 내내 “돼지”라는 놀림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듣고, 그 후에는 친척들에게 살 빼라는 진심 어린 또는 무성의한 참견을 들었다. 나는 언짢은 티를 냈지만, 그 말들은 나의 귀에 지겹게 꽂혀 들어왔다. 나는 내 외모에 그렇게까지 불만을 느끼지 않았지만, 자꾸 외모 평가를 당해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 무력감을 주었다. 주변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거울 속의 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을 여러 번 했고, 2년 전 한 번을 빼고는 실패했다. 대부분은 식욕 때문이었다.
강의 내용을 준비하며 체중 관리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적정한 체중 관리는 청소년 건강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비만은 실제로 고혈압, 당뇨, 고지혈 등 혈관질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방간으로 간 수치가 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실만을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체중이거나 비만한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체형을 너무나도 확실히 자각하고 있다. 의과대학 학생일 때 수업을 들으며 비만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숱하게 들었다. 강의를 들으며 적정 체중이 아닌 내가 불건강하고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느낀 감정을 강의를 듣는 청소년들에게 다시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체중 관리 내용을 다루기로 했다. 신체 건강을 다루면서 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었다. 대신 비만이 잘못되거나 놀림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체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디 포지티브 운동도 설명하고, 마른 체형만을 강조하는 미디어에 대한 경각심도 다뤘다. 사실 아직도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맞았나, 혹시 비만인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곱씹게 된다. 의료인으로서 한 나의 강의가 유익하면서 동시에 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강의를 준비하며 나는 어떤 의료인이 될지 또한 생각해 보았다. 학생 강의에서 건강관리를 강의했듯이 나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을 앓은 환자들에게 건강한 습관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환자의 체형이나 생활습관으로 그를 다그치고 싶지 않다.
언제 나에게 정기적으로 혈압약을 타가는 환자가 말했다.
“제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교수님이 저를 볼 때마다 혼내더라고요. 살을 안 빼서 이렇게 수치가 안 좋다고요.”
사실 이 환자는 건강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고혈압약도 아주 약하게 먹고 있었고, 고지혈증도 약으로 조정되는 상태였다. 당뇨 수치인 혈당도 정상보다 아주 약간 높은 정도였다. 생활습관을 물어봤을 때 운동도 이미 하고 있고, 식습관도 나쁘지 않았다.
“저는 순영님이 지금 상태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혈액 수치도 약으로 잘 조절되고 있고, 생활습관에서도 아주 크게 바꿔야 할 부분은 없어요. 자신을 탓하지 마시고, 지금 상태를 유지하며 지내셨으면 해요.”
그 후 그 환자가 오면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특별한 일은 없는지 묻는다.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당뇨가 있는데 믹스커피를 먹는 등 질병과 중요한 인과관계가 있는 생활습관은 꼭 환자들에게 같이 고치자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길 요구하지 않는다. 나 조차도 어려울 것 같은 생활습관을 다 지키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아무리 완벽한 식단이나 운동을 지킨다 해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활습관에 대한 강박으로 환자가 자신을 얽매고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네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나는 내 역할을 생각할 때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이미지를 떠올린다. 엘리트 선수들을 위한 코치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들과 같이 달리는 페이스메이커. 선수들이 오버페이스하지 않도록, 무사히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도록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 사람.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만들어 나갈 때 그 옆에서 같이 달리는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려고 한다.
강의를 마치며 말했다.
“저는 결국 건강 관리가 균형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로 우리가 오래오래 건강한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신체에 좋은 습관들을 익히고 실천해야겠지요. 그러나 항상 완벽한 생활습관을 지키며 살 수는 없어요. 가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운동도 하루 쉬고 싶을 수 있잖아요. 어느 정도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거예요. 내 몸을 아끼고 관리하는 동시에 완벽한 신체와 습관에 대한 상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이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서 건강 관리라는 마라톤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달려나갔으면 합니다.”
나의 고민이 담긴 이 짧은 강의가 학생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