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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Jun 17. 2023

위와 식도 사이에 괄약근이 필요한 이유


“선생님, 저 기관지가 안 좋은 것 같아요. 계속 기침을 해요.”
환자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왔다. 기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기침을 한 기간, 발열이나 가래 등 다른 증상의 동반 여부, 가지고 있던 질환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얼마 동안 기침하셨나요?” 
“두 달이요.”
“혹시 가래가 나오나요?”
“목이 간질간질해서 한참 기침하면 가래가 아주 조금 나와요.”
“흰 가래예요 노란 가래예요?”
“흰 가래요.”
이 환자의 경우 기관지나 폐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만약 폐렴 같은 위험한 질환이었으면 2달 동안 기침이 나기 전에 이미 죽거나 살거나의 문제가 된다. 일반 감기도 2주 이상 기침가래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기관지확장증 등 만성 폐 문제가 있을 때는 주로 누런 가래가 나온다. 


“혹시 속이 싸하거나 생목 올라오는 느낌이 있나요?”
“아, 맞아요. 요즘 김치찌개 같은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올라와요.”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네, 맞아요.”
환자가 멋쩍스럽게 말했다. 위식도 역류질환에는 속이 싸하고 가슴이 아픈 역류성 식도염 증상과 목이 간질간질하고 기침을 자꾸 하게 되는 역류성 후두염 증상이 있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이런 증상들이 더 잘 나타나도록 한다. 


“환자 분의 경우 기관지 문제가 아니라 위식도 역류질환일 가능성이 높아요. 위에서 위산이 식도로, 또는 목까지 올라올 때 지금처럼 목이 간질간질하며 마른기침이 나와요. 위장약을 먹으면 증상이 빨리 낫는 편이지만, 안 먹으면 재발해요. 재발 안 하려면 생활습관을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위식도 역류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에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술, 담배, 커피, 탄산음료 등은 가급적 줄여야 한다. 밥 먹고 2~3시간 내에는 눕지 말아야 한다. 몸을 꽉 조이는 옷도 좋지 않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식도를 지나 위로 간다. 그 사이에 식도하부괄약근이 있어 위로 내려온 음식과 위산이 식도로 올라오지 않도록 막아준다. 괄약근은 우리 몸의 통로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고리 모양의 근육으로, 항문뿐만 아니라 식도 하부, 요도 등에도 있다. 앞에 말한 술, 담배, 커피 등은 식도하부괄약근이 풀어지도록 만든다. 그러면 식도하부괄약근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위산이 역류되기 쉽다. 


위와 식도, 식도하부괄약근을 보면 인간관계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도와 위는 음식물을 소화하는데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지만, 그 사이에는 괄약근이 꼭 필요하다. 괄약근이 제 역할을 못 할 경우 위산은 역류해 식도를 상하게 한다.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 간의 경계가 괄약근을 대신한다. 경계는 ‘타인’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내 몸과는 다르게 타인은 나와 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존중이 있을 때 경계를 지킬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 간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연결점을 만든다.  누군가가 그 연결점을 넘어 타인의 고유한 경계를 침범하면, 괄약근이 풀린 위가 위산으로 식도를 상하게 하는 것처럼 그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나 또한 예전에 친구에게 위산을 흘려보낸 적이 있다. 우리는 몇 년간 가장 친했던 친구로 서로에게 의지하는 사이였다. 우리 둘 다 힘들었던 시절, 나는 그 친구의 경계를 침범했다. 친구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의 마음에 맞춰주기를 바랐다. 우리가 틀어졌던 계기 중 하나는 내가 아팠을 때였다. 이유 없이, 급작스럽게 심한 발열과 두통이 생겼다. 주말 저녁이어서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혼자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친구가 같이 있어줬으면 했지만, 그는 중요한 시험을 앞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친구는 거절했고, 다행히 내 어머니가 오실 수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섭섭하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참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건너 들은 바로는 그 일로 친구가 상처받았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로도 나는 그 친구에게 막연한 불편감을 느꼈다. 우리가 서로 안 맞는 것 같다는 삐그덕거리는 마음을 가졌다. 왠지 모르는 불편감 속에 나는 내가 그 친구를 함부로 대하는 지도 자각하지 못했다. 친구는 결국 절연을 선택했고, 그 일은 둘 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친구가 내 경계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란 듯하다. 왜 나는 그랬을까, 후회도 된다. 충격을 받은 후 나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내 친구는 당연하지 않다. 아무리 친해도 서로의 경계가 있음을 알고, 존중해야 한다. 


그 이후로 나는 조금 바뀌었다. 친한 친구들이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고민할 때 조급한 마음이 들어도 조금 참고, 친구가 약속에 늦을 때도 내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 사이에 예의와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신조도 생겼다. 예의도 타인과의 경계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나는, 앞으로도 언젠가 타인의 경계를 밟을 것이다.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완벽한 괄약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위산을 흘려보내는 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항상 조심할 때, 경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할 수 있다. 경계를 잊지 않고 조심하는 것이 내가 또 다른 위가 되는 것을 조금 예방해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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