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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Jun 09. 2023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내가 이전부터 갖고 있는 조금 특이한 가설이 하나 있다. 세상 많은 것들의 작동 원리가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과학 및 의학적 사실과 사람이 사는 방식에도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다고 여긴다. 의학을 공부하고 의원에서 치료를 하며 내 마음의 원리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상처 재생 과정에서 본 마음의 치유, 위와 괄약근의 관계에서 본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조금 널널한 오후였다. 진료 창에 [화상 환자]라고 떴다. 

환자를 처치실로 안내하고, 상처를 보았다. 

“선생님, 커피포트를 엎었는데, 물집이 잡혔어요”

“언제 다쳤어요?”

“이틀 전에요.”

“에고, 조금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일단 물집에 물을 조금 뺄게요. 물집 껍질은 제거하면 안 돼요. 새로 살이 돋기까지 임시 보호막이 되어줄 거예요.”

바늘로 물을 뺀 후, 항생제 연고를 바르고 재생거즈를 얹었다. 

“내일 상태 다시 볼게요. 초반에는 하루 한 번, 좀 나아지면 이삼일에 한 번씩 오세요.”

네 번째 상처 치료 후, 그의 상처는 깨끗이 나아 있었다. 


몸과 마음은 둘 다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이 있다. 신체의 회복 과정부터 살펴보자. 언뜻 보기에 물렁하기만 한 피부는 사실 우리 몸을 보호하는 꽤 튼튼한 장벽이다. 각질층이 층층이 쌓여 물리적 보호를 하는 동시에 다양한 세포들이 몸을 지키는 면역 및 재생의 역할을 한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피부는 다 계획이 있다. 피를 굳히는 혈소판이 상처를 지혈하고, 병균을 죽이는 백혈구가 세균과 이물질을 제거한다. 그 후 임시 피부 조직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며 임시 조직은 정상적인 피부 조직으로 성숙한다. 마음의 치유에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마음도 지혈이 필요하다. 붓다의 말 중 ‘첫 번째 화살은 맞아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마음에 상처를 스스로 더 깊게 만들지 않기, 즉 자책하거나 원인을 끊임없이 파고들지 않기 정도의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책, 참 많이도 했다. 특히 약속에 늦었을 때 자책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늦었네’, ‘내가 늦어서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등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제는 그냥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는 걸 택했지만, 어쩌다 늦을 때도 너무 괴로워하지는 않으려 한다. 어차피 일어난 일,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도 변화가 없을 일에 내 감정을 쏟기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지각을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하고, 이왕 받은 스트레스는 다음에 늦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으로 써야겠다고 맘먹는다. 그러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우리 몸의 백혈구가 이물질과 병균을 제거하듯, 마음의 나쁜 것들도 쫓아내야 덧나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악질적인 세균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었다. 자기 증오(또는 자기혐오)는 자책감과 똘똘 뭉쳐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대학교 때 동기들과의 관계가 편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단지 지향점이나 코드가 안 맞았던 것이지만, 학교 내에서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낄 때마다 이게 다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향한 미움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내 마음의 백혈구는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었다. 내 줏대나 내 취향, 자기 이해가 없이 남들에게 끊임없이 휘둘렸다. 나에게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중요시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속을 이러한 것들로 가득 채웠을 때, 자기 미움이라는 병균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지혈과 이물질 제거가 무사히 되면, 몸의 상처는 재생을 시작한다. 육아조직이라는 임시 피부 조직이 상처 위를 덮는다. 마음도 망각과 일상생활의 재개가 이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육아조직이 원래의 피부조직이 되려면 성숙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게도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교 때 동기들과 부딪히며 생긴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나는 나대로 뾰족한 지점이 있었고, 동기들은 그들대로 다름에 대한 불관용이 있었다. 나는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았다. 우울과 갈등으로 많이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의사로 내 일을 하며 그 시간은 뒤로 점차 밀려나고 괜찮은 일상을 보냈지만, 마음의 피부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한동안은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시간이 더 지나자, 상처는 그냥 과거가 되었다. 그 시간이 ‘아, 그땐 그랬지.’ 정도의 기억으로만 남아 나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때, 나는 온전히 괜찮아졌다. 


지금도 간간히 옛날 기억들이 마음 아리게 올라온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상처들이 무섭지 않다. 몸이 상처를 스스로 회복하듯이, 마음도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 회복탄력성이 있다. 앞으로도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입겠지만, 나는 내 마음에, 내 회복력에 믿음을 건다. 피부도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나으니까. 


+. 덧붙이는 말

정신의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어떤 트라우마는 스스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몸의 큰 상처는 알아보기 쉽지만, 마음의 큰 상처는 알아보기 어렵다. 마음의 고통은 오로지 본인만이 그 정도를 온전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상처를 내 맘대로 재단하고, 조언을 가장해 평가와 간섭을 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에 대해 귀 기울이고, 내 잣대를 들이대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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