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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Oct 09. 2023

어쩌다 동네의사는 나의 찰떡 직업이 되었는가?

인생사 새옹지마

10시 30분, 한창 의원이 바쁜 시간이다. 이번 환자는 일반검진을 마친 후 문진을 해야 하는 환자다. 

“이영란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환자가 한쪽 손으로 다른 쪽 팔오금을 누른 채 들어왔다. 피를 뽑은 자리에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단 엑스레이 한 번 볼게요. 폐는 깨끗해요. 저기 보이는 하얀 것들은 폐길 이에요.”

늘 하던 문진 루틴을 시작했다. 

“혈압도 좋고, 시력도 괜찮네요. 가지고 있는 질병이 있나요?”

“아, 딱히 없어요.”

 잽싸게 체크해야 할 질병들을 한 번 읊는다.

“뇌졸중, 심장병,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결핵, 암 그런 질병 현재 없죠?”

“아, 고지혈증 약 먹고 있어요.”

고지혈증 란에 체크한다. 

“가족 중에는 뇌졸중, 심장병이나 고혈압, 당뇨, 암 없나요?”

“아, 어머니가 고혈압이세요.”

“네, 알겠습니다.”

가족력의 고혈압 칸에 체크.

그 후 뒤에 생활습관도 한 번 쭉 본다. 술, 담배, 운동 다 하지 않는다.  

“ 술, 담배 안 하시는 것은 좋네요. 운동은 조금만 챙겨하면 좋겠습니다. 주 150분이 기준이니까, 참고해 주세요.”

운동을 권유하면 10명 중 8명의 환자들이 멋쩍게 웃는다. 


일반건강검진에서의 문진은 내가 하는 정기 업무 중 하나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진료 중 하나이지만 이 시간 동안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주려 한다. 흉부 엑스레이도 한 번 보고, 의무는 아니지만 생활습관도 같이 한 번씩 확인하고 있다.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 반, 환자가 무언가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으로 나의 집중력을 쏟으며 설명하고 질문한다.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환자가 웃음 지으며 감사하다 인사하고 갈 때, 뿌듯함이 몰려온다. 내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고, 환자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점이 기분 좋은 듯하다. 동네 의사로 산다는 건 나에게 참 다행인 일이다. 


한 때 내 인생이 최악이었던 순간이 있다. 바로 의과대학 학생 고학년 때이다. 한창 우울에 시달리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때 환경도 나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병원으로 실습을 다니는 동시에 끝없이 쏟아지는 공부와 시험은 내 한계까지 차올랐고, 동기들과도 미묘하게 안 맞았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점은, 내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동기들과 한 자조적인 농담이 있었다. 우리 실습생들과 병원 먼지의 차이는 먼지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교수님이 회진을 돌면 우리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강의도 간간히 듣고, 시험을 치고 했지만 많은 실습 시간을 뒤에서 병원의 일들을 지켜보며 보냈다. 무력감이 많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내 진로가 이게 맞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열심히 하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나는 주어진 과제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재미없었다. 그러한 고민은 의사 일을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환자를 직접 봐야 하기에 의학 공부는 나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그만큼 집중해서 공부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짬시간에 의학 관련 자료를 계속 봤다. 의사 일을 시작한 첫 6개월은 불안 불안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내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진료도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 의사라는 직책으로 나는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한다. 나의 의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치료한다. 동시에 마음적인 부분도 챙기려 한다. 심각한 질병이 아닌 환자는 안심시켜 주고, 만성 질환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에게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려 한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줬을 때,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고 환자가 말한 적도 있었다. 나로 인해 환자들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그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 


학생 시절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이러한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은 터널처럼 빛은 멀고 어둠은 가까운 시기이지만, 언젠가는 그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의원에서 일할 것이며, 따뜻하고 든든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나의 중요한 역할이 생기고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미래가 있다는 것을, 그 당시 나는 몰랐다. 학생 때 고생하며 공부한 것들이 그대로 나의 지식이 된 걸 보면, 아무래도 인생은 새옹지마이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새옹지마 이야기에서 잘 된 일과 안 된 일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 기쁜 시간도 있고 슬프고 괴로운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난 괜찮다. 나는 힘든 순간들을 이겨냈고, 이를 버텨낸 힘이 내 마음속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안정되고 즐거운 순간들도 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나의 또 다른 내적 힘이 된다. 그래,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지. 오늘도 내 역할을 다하자, 내 삶을 충실히 살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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