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집회 의사일기 #1
들어가며
이 글은 윤석열 계엄 선포부터 탄핵이 이루어지기까지, 직접 겪고 느낀 순간들의 기록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이 선포되었고, 2025년 4월 4일 탄핵이 인용되었다. 이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시간을 기록했다.
12월 3일. 이날은 내 생일이었다. 낮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고, 그날 당직이었기 때문에 오후 10시 경 조금 눈을 붙이려고 침대에 누웠다. 밤 10시 28분, 내 삶에서 가장 믿기 어려웠던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이게 진짜인가? 계엄, 적어도 내가 살아왔던 역사에는 낯선 말이었다. 계엄은 한국 근현대사 책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몇몇은 국회로 달려갔다. 나는 부산에서, 병원을 지켜야만 했다. 무서웠다. 텔레그램에 계속하여 새로고침을 했다. 전신의 피가 시리게 식어갔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가.
그 와중에 시시각각 소식이 올라왔고, 국회 안팎의 모습도 생중계되었다. 국회 앞을 막는 군인들, 이를 피해 담을 넘어가는 국회의원들이 보였다. 제발, 제발.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진 않았던 국회의원들을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몇 명이 국회의장에 모였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군인들은 국회를 봉쇄하고, 진입을 위해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다. 보좌관들은 가구들로 문을 막고 몸으로 군인들을 막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시민들이었다. 약 4,000명의 시민이 목숨의 위협을 불사하고 국회로 뛰어가 총을 든 군인들을 막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시민들이 있었기에 그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12월 4일 새벽 1시 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그제야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의 공식 비상계엄 해제 선언은 계속 미뤄졌다. 일단 가결 소식을 듣고, 눈을 붙였다. 12월 4일 5시 3분,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이 해제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윤석열. 이 그는 이다음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