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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31. 2023

몸으로부터

어쩌면 보통날 11



3년 만에 처음 코로나에 걸렸다. 그간 국경도 여러 번 넘었고 직전 여행은 완벽히 마스크 오프였던 터라 나는 내가 슈퍼항체 보유자인 줄 알았다. 


설 연휴를 맞이해 남동생이 집에 내려왔다.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여 저녁을 함께 먹었다. 저렴한 고기 가격에 밑반찬도 잘 나와 언제나 손님이 넘치는 집 근처 식육식당에서였다. 최근 어떤 유튜브에 맛집으로 소개되었다더니. 넷이서 소주 세 병을 나눠 마실 때까지 빈자리가 없었다. 삼겹살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게 식사를 마쳤다. 토요일인 내일 점심 때로 성묘 갈 약속을 잡은 뒤 집에 돌아왔다. 그날 새벽, 몸이 으슬으슬 추워 몇 번이고 잠에서 깼다.


혹시나 하고 아침 일찍 약국에 들러 사 온 자가 키트 결과는 확실한 한 줄. 그냥 감기인가 싶었지만 뭔가 느낌이 달라 집에서 점심을 따로 챙겨 먹고 운전도 따로 해 성묘를 다녀왔다. 그리고 다음날. 본가로 가기 전 혹시나 하고 해 본 자가 키트에 선명한 두 줄이 그어졌다. 괜찮겠지 낙관하기보다 혹시 몰라 점검하는 성격이 이토록 다행일 줄이야. 한산한 보건소에 들러 PCR 검사를 마쳤고 다음날 바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남들 한 번씩 다 걸린 코로나 무슨 뒷북이냐 싶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몸 상태는 신기했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 여러 겹 껴입으면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워졌고, 옷을 새로 갈아입으면 다시 닭살이 돋을 정도로 추운 걸 반복했다. 그러다 뒷골이 땅기는 것처럼 두통이 찾아왔고, 목이 깔깔하게 아프더니 이윽고 코가 막혔다. 종합감기약을 허용치까지 연달아 먹고 잔 다음날, 하루 만에 인후에 약한 이물감이 있고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정도로 증상이 완화되었고 그 상태 -멀쩡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생활에 딱히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닌- 가 쭉 이어졌다. 기실 코로나 확진일과 동시에 찾아온 생리통이 열 배쯤은 더 아팠다.


독립의 장점을 자유, 아지트화, 안정감으로 꼽아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독립의 자유는 자가 격리에서 온다. 일상에 어떤 변동도 주지 않고 이전처럼 그대로 생활할 수 있는 것. 오미크론 대응을 위해 입국자 모두 10일간 의무 격리를 했던 때에 이은 두 번째 자가 격리. 철없이 솔직하게 휴가 같았다. 회사에 안 가니 일단 좋은 것이 먼저인.


격리 기간 동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무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딱히 그러지 못했다. 생활에 딱히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것도 아니라서 무언가 할라치면 집중력이 훅 떨어져서였다. 음식 냄새가 맡아지지 않아 식욕이 없었고, 식욕이 없으니 대부분의 의욕이 사라졌다. 무거운 몸 앞에 우선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자부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쓰지도, 생각하지도, 읽지도 않았다. 사유는 사라지고 본능만 남았다. 실로 모든 것이 귀찮았다. 자가 격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도 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읽지 않았다. 그저 한 번 웃고 휘발되는 예능 클립들만 봤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순서대로, 고르지 않고, 무의식대로.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읽는 것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으니 일상에서 소멸되었다.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읽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후순위였다. 내게 체득되지 않은 물설음들.


완전하지 않은 몸 상태는 생각의 가지를 뻗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행 중 다행으로 충격도 거기까지였다. 더 생각하지 못해서.


예능 클립을 멍청하게 보다 보면 하루하루 시간은 잘도 갔다. 일어나서 씻고, 예능 보고 점심 먹고 약 먹으면 낮잠. 일어나서 예능 보고 저녁 먹고 약 먹으면 밤잠. 하루가 하찮았다. 하찮게 지났다. 그냥 사는 것은 몸으로 사는 거구나. '잘'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도 '사는' 게 별 건가 싶은 시간들의 총합.


몇 해 전 급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회사 정기 건강 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돼 급히 대학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으면서였다. 몸 안에선 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었을지언정 몸 밖의 나는 그대로라 좀 얼떨떨한 상태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다. 내가 받은 수술이 뭔지, 내가 떼어낸 조직이 어떤 조직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마취가 풀린 수술 자국의 통증은 매번 착실하게 느꼈다. 그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을 논했지. 그때만큼 나 자신의 실존에 대해 완벽하게 감각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맘때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L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내게 적극적인 호감을 표시했던 L은 3시간이 넘는 시간을 곧잘 들여서 나를 보러 왔었다. 내가 수술을 한 시기는 L과 그렇게 세 번쯤 만났을 때였다. 정이 들기엔 너무 짧았던 시간. L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 없이 내 신경은 온통 내 몸에만 있었고, 급작스럽게 병원을 찾아온 L을 만나지도 않고 돌려보내기까지 했었다. 몸이 힘들고 아파서 짜증이 이는 상황에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그게 L일지언정. 그 이후 자연스럽게 L과 연락이 끊어졌었지.


골골대며 누운 침대에서 L을 잠깐 생각했다. 만날 수 없는 타이밍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게 L과 나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내 몸이 아닌 그 어떤 것에도 마음 줄 수 없었을 때. 


글 쓰기도, 사유도, 독서도, 하물며 사랑도. 모든 것은 몸으로부터다. 단단하고 건강한 몸.


일주일 간의 격리가 끝났다. 그렇게 용을 써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조금 줄어들었고 여전히 음식 냄새는 맡아지지 않는다. 맛을 느끼는 것이 일상의 기쁨에 팔 할쯤 차지한다 치면 일상의 팔 할 쯤의 기쁨이 사라졌다. 그 사이 엄마의 새 여권을 발급받았다. 벌써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올라 있는 추석 항공권을 일찌감치 발권하려고 엄마 여권을 확인했더니 올 3월이 만기였기 때문이다. 그새 10년이 흐른 거였다. 새 사진을 붙인 새 전자 여권을 받았다. 엄마의 얼굴이 딱 10년 늙어 있다.


인스타그램이 1년 전 오늘 게시한 게시물을 소환했다. 2022년 1월 31일. 첫 회사이자 현 회사에 입사해 만 10년을 일했다고 적어놓은 날이다. 그렇담 2023년 1월 31일은 첫 회사이자 현 회사에 입사해 만 11년을 일한 날. 하찮고 별 거 아닌 하루하루가 모이니 이 날짜가 되었다. 몸으로 쌓아 올린 시간이다. 별 거 없어도 시간은 충실히 쌓였다. 1월 한 달이 지났다. 1월 상반기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n차 관람으로, 1월 하반기는 코로나로 기억되겠다. 


아직 몸은 완벽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는 가고, 하루가 또 쌓일 것이다. 그다지 훌륭하지 아니해도, 대수롭지 아니해도, 그렇게 하찮아도. 


그러니 일단 중요하게. 빨리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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