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보통날 20
1.
오전 7시 1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뜬다. 씻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오전 8시. 가방을 챙겨 나와 차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자 어제 마지막으로 듣다 만 노래가 끊긴 부분부터 흘러나온다. 오전 8시 5분. 회사로 출발한다.
몇 천 곡이 담긴 MP3이지만 결국 듣는 노래는 늘 거기서 거기다. 이 노래는 아침에 안 어울리니까 넘기고, 이 노래는 전주가 당기지 않으니 넘기고, 이 노래는 그냥 넘기고. 모니터를 보며 다음 노래를 확인하는데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타이밍을 놓친 채 얼마쯤 갔나.
"어? 이 노래는?"
모니터에 띄워진 감색의 <Born to do it> 앨범 재킷. 크렉 데이빗이다. 노래 제목은 낯선데 이 전주, 이 목소리, 이 앨범 재킷은 아주 선명하다. 당연하다. 이건 내가 내 돈을 주고 산 첫 번째 외국 가수 CD이니까.
오전 일찍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시내로 나와 레코드 가게를 찾아간 날이었다. 오늘은 꼭 CD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상한 다짐 같은 것이 섰기 때문이다. 그때가 열여섯이었는지 열일곱이었는지도, 크렉 데이빗의 앨범을 콕 집어 미리 생각을 해놓고 레코드 가게를 찾았던 건지도 지금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당시 수중에 만 오천 원이 있었고 CD는 만 육천 원이었는데 천 원을 깎아 샀던 것과 그렇게 갖고 있던 돈을 다 써버려 집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었던 기억은 확실하다. 무척 추었던 한겨울이었고, 통 큰 바지가 걸으며 비벼지던 겨울의 소리와 막판엔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차가워졌던 피부의 감촉 또한 선명하고.
수능을 끝낸 고3 막바지 시절엔 오전 수업만 받고 하교를 했다. 기말고사가 남아있음에도 이 시기의 학생들을 학교에 묶어놓을 명분이 없다고 판단을 했던 건지 수능이 끝난 다음날부터 수업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던 탓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집까지 걸어갔다. 교복이 예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선택한 학교라 내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걸으면 집까지 약 1시간 40분이 걸리는 거리지만 그랬다. 그때도 크렉 데이빗 CD를 들었나, 다른 CD를 들었나, 아니면 그때 MP3가 있었나 이 역시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쉬지 않고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오후 3시쯤 도착한 빈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들뜸과 무력함이 무심히 공존하던 시절, 나는 졸업 직전까지 내내 걸어서 하교했고, 그 걸었던 시간만은 확실하게 생각난다.
떠올릴 일이 없어 어딘가에 묻혀 있던 장면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옛 것이 되어버린 장면들. 그 장면 속 나는 걷고 있다. 발바닥으로 흡수한 시절 시절의 나.
2.
글도 말을 따라간다. 말처럼 글도 길어진다. 부사를 하나 더, 쉼표를 하나 더, 단어도 반복하고.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내 입말에 자연스러운 형태의 글을 쓰는 데다 내용조차도 지극히 개인적인 걸 담다 보니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가 싶다. 그래도 일단 쓴다. 이런 플랫폼이 아니었으면 이마저도 쓰지 않았을 테니. 스스로 어깨에 지우는 가벼운 숙제. 완전한 자유에선 느끼지 못하는 적당한 무게의 추진 동력.
만 오천자에 가까운 긴 여행기를 썼다. 일주일 간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배치해 그 동선으로 이동하며 느꼈던 감상과 인상적이었던 풍경을 담았다. 문장의 호응이 맞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좀 더 매끄러운 표현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며 재독 하는데, 과연 이게 재미있는 글인가? 싶다. 나야 이 여행을 직접 행한 사람이니까 과정의 모든 장면이 그려지는데, 여행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겐 그저 양만 많은 자아 비대형 글일 것만 같다.
중간중간 환기를 위해 사진도 넣고 그림도 넣고 문단도 줄일까. 핸드폰 사진첩을 몇 번이고 뒤적이다가 포기했다. 내가 쓴 문장을 이미지화하려면 문장마다 한 두 장의 사진이 반드시 필요했고, 사진과 그림을 빌려야지만 그려지는 문장은 이미 그 자체로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글 전체를 그대로 삭제하려다 내 글의 가장 첫 독자인 나는 이해시켰다는 변명으로 마무리한 글을 업로드했다.
글자로만 가득한 여행기를 읽어도 그 도시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만드는 글을 탐낸다. 문장 그 자체로 그림이 되고 사진이 되는. 진솔하지만 유려하고, 간결하지만 눈에 선명한 글을 언젠가 꼭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3.
여름 휴가지를 일찌감치 정했다. 가보지 않은 나라면서 되도록이면 멀리. 그렇다면 역시 북유럽이었다. 오슬로로 들어가 스톡홀름, 코펜하겐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짰고 그에 맞춰 항공권 결제를 마쳤다. 출발일까지 한참이 남았지만 휴가 결재도 바로 득했다. 해가 긴 유럽, 그것도 북유럽이니 마음 바쁘지 않은 여행을 해야지 다짐한다. 물론 지켜질지는 미지수.
파리나 런던처럼 SNS에 흔히 올라오는 유럽 여행지도 아니고, 여름의 북유럽 이미지만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터라 아주 오랜만에 여행책을 구입했다. 글자를 먼저 눈에 담기보다 소개된 사진이 취향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 각 장소의 소개글을 읽고 지도에 위치를 점쳐보는 것, 도시의 인구수와 종교, 쓰는 언어와 화폐 단위, 주요 공휴일과 교통 패스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읽어보는 것. 언젠가부터 구글 지도나 블로그 리뷰 등으로만 여행 정보를 습득하는데 오랜만에 여행책을 통한 아날로그적 과정을 거치고 있자니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함께 산 <북유럽 미술관 여행> 책을 연이어 읽으려다 갑자기 '어?' 뇌리를 스치는 책이 있다.
"나 그때 도쿄에서 코펜하겐 여행책 사 오지 않았나?"
곧바로 책장을 향했다. 작고 얇은 문고본이라 선반 끝자락에 끼어 있는 걸 어렵게 찾았다. <3 days in Copenhagen>. 2010년 여름,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에서 사 온 여행 책. 일본어로 쓰인 원서.
지금이야 마그넷이며 스타벅스 빈 데어 시티 머그며 이런저런 잡다하고 다양한 물건들을 여행 기념으로 사 오지만 여행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때의 나는 그 나라 언어로 쓰인 사진집이나 여행책 한 권으로 기념품을 대신했었다. 사진집은 이미지로 이해하면 되고 여행책은 소개된 장소의 이름만 알아도 충분한 데다 무엇보다 다른 것도 아닌 책을 구입했다는 허영심을 충족할 수 있어 꽤 오래 지속한 행동이었다.
우리나라에 잘 소개되지 않은 나라의 여행 책 종류가 많은 일본이었고, 그중 내게 가장 낯선 도시이자 국내에서 책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은 도시를 선택해 보자 했고 그게 코펜하겐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 책이 있었네. 게다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일본어 때문에 이젠 내용을 읽을 수도 있다. 우연이 아닌 이끌림. 내가 가진 호오와 취향의 결과. 결국 나는 언제가 됐든 코펜하겐을 꼭 가게 되었을 것이다.
여행 책은 당시의 것을 다룬다. 그렇기에 영원불멸한 고전이 되지 못한다. <3 days in Copenhagen>에서 추천한 카페와 식당은 현재 대부분 폐업했고, 소개한 여행 예산은 지금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중 몇 개의 카페와 식당은 14년이 지난 오늘까지 영업 중이며 꼭 방문해 보라는 티볼리 공원은 그간의 역사를 더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테마파크의 명성을 여전히 지속해오고 있다. 14년이 지나 여전히 살아남은 곳들의 리스트를 새로이 옮겨 적었다. '반드시 방문해 볼 것'. 사견을 덧붙여서.
현재를 지탱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여행에 기대고 살아 여행 자체의 순수한 즐거움은 없어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꾸깃꾸깃 종이 지도를 접어가며 길을 찾던 그때의 내가 치민다. 묻혔던 내가 현재로 치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