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까짓 거 해보지 뭐

제이 독립 일기 01

by 제이



"저 오전에 전화로 문의했던 사람인데요"


자동문을 열고 들어 선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후덥지근했다. 믹스 커피를 타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이 자리를 정리했고, 남은 한 명은 널찍한 우드 책상으로 이동했다.


"네, 어서 와요."


'언니, 나 먼저 가' 자리를 정리하던 여성 한 명이 내게 목례를 살짝 건넨 뒤 사무실을 나섰고, 화려한 봉황이 양 쪽으로 수놓아진 명패를 앞에 둔 여성은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봤다. 의자에 앉으라는 둥, 어떻게 왔냐는 둥의 추가 질문 없이 책상 위로 팔짱을 낀 채였다. 딱 보니 실속 없다 싶은가.


"00 아파트 단지 매물을 좀 보고 싶어서요."


현재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고 있고,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서 매물과 시세를 확인하고 왔다고 말하자 그제야 차 한 잔 할 거냐고 묻는다. 머리카락으로 가린 뒷 목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덥다. 아니, 긴장한건가. 생각하고 있는 금액대를 말하자 이사를 나가 비어 있는 집 몇 채와 사람이 살고 있어 생활감을 볼 수 있는 집 몇 채와 폴딩 도어 및 강화 마루 등으로 최근 2년 내 리모델링을 한 집까지, 꽤 비교군들이 있었다.


"혹시 지금 바로 보러 갈 수 있나요?"

"물론이죠. 가실까요?"


열쇠 꾸러미를 챙기고 마스크를 챙겨 든 공인중개사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바깥공기가 훨씬 낫다 싶다. 사무실 앞 횡단보도를 지나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낮의 놀이터는 코로나 여파로 고요했다. 이 동네 살면 입지 조건을 잘 알 거라며 집 값이 크게 오르는 동네는 아니지만 살기는 편한 곳이라는 설명이 내내 이어졌다.


"처음으로 볼 곳은 14층. 정남향이라 빛이 잘 들어오는 집이에요. 자, 여기 208동"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직장을 얻은 나는 당연하게도 본가에서 생활했다. 크지 않은 도시에서 '굳이' 월세를 추가로 내며 살 필요가 없었고,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타지 생활을 했던 내내 누리지 못했던 금전적 여유를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서울 생활을 포기하는 대가는 의외의 달콤함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갑자기 고장 난 헤어드라이어를 급하게 사놓는 것, 혹은 배달 어플로 야식을 시키거나 홈쇼핑에서 빵빵한 할인 특가를 진행하고 있는 청소기를 사는 것 등으로 생활비를 갈음했다. 그러니까 부모님께 따로 현금을 드리는 것 없이 마음대로 월급을 썼단 얘기다.


'너는 독립 생각 없어?'

'나는 끝까지 존버 할 거야. 진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또 버틸 거야'


결혼 생각도 딱히 없고, 엄마랑 생활 반경이 그리 겹치지 않아 집 안에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데다, 많게는 두 달에 한 번씩 못 해도 일 년에 서너 번은 해외여행도 다니며 부지런히 덕질까지 해야 하는 나는 본가에서 최대한 엉덩이를 붙일 생각이었다.


'집 알아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 귀찮기까지 하고'


그 모든 '굳이'의 결합으로 나는 서른과 마흔의 중간에 다다른 나이가 된 지금까지 독립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았다.






욕구는 필요에 의해서 자라나고 욕구 그 자체로 생명력을 얻는다. 무한대로 뻗어 나간다.


일부러 차를 가지고 나와 주차장이 넓은 대규모의 카페 창가에 앉았다. 방금 내가 적은 다이어리의 문장을 바라 봤다. 집을 피해 카페를 찾아 나온 지 벌써 몇 번째의 주말이다.


네 살 조카가 집에 들어왔다. 독박 육아에 몸과 마음이 흐물 해진 동생의 지친 결단이었다. 자동차며 공룡이며 동화책 전집이며. 조카의 많은 짐이 들어왔다. 거실 전체엔 두툼한 매트가 깔렸고 거실 가운데엔 조립식 미끄럼틀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솟았다. 퇴근 후 냉장고를 여는 내게 "이모 이거 읽어 줘" 책을 내미는 조카의 고사리 손에 화들짝 놀라며 꺼내던 맥주를 감췄고, 주말엔 "왜 안 일어나"하며 일찍부터 방을 침범해 들어오는 조카의 발걸음에 출근하는 날보다 더 일찍 몸을 일으켰다.


집에 '내'가 있을 '공간'이 없다. 그걸 인지했다.


엄마와의 사이도 나빠졌다. 엄마의 고전적인 육아 방식은 내게 잠재된 트라우마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자주 내 심기를 건드렸다. 스킨십이 없이 건조한 엄마의 손등과 무심하게 툭툭 '아랫집 아저씨가 혼낸다, 이놈 아저씨가 잡으러 온다' 겁을 주는 말투는 곧잘 말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그동안 내 것인 줄 알았던 공간은 내가 잠시 빌려 쓴 것이었다. 내 것인 줄 알았던 시간은 드러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점유한 것이었다. 곳곳에 숨어 있던 불편이 이때다 싶어 하나둘 씩 고개를 들고 나니 좀처럼 지뢰를 피할 수 없어졌다.


"독립이라..."


대학 때도 이모네 집 방 한 칸을 얻어 썼고, 졸업하자마자 본가에 돌아온 내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단어가 자각됐다. 독립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온통 헤집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저마다 부동산 전문가를 자처하는 선배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집은 미래 자산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알아볼 땐 준공 날짜와 세대수, 교통과 학군을 따져야 한다. 낮에도 가보고 밤에도 가보며 유흥시설은 없는지, 주차장이 헬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 공인중개소를 다니고 질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0월에 분양이 시작되는 00 아파트를 노려야 한다. 대출을 받는 것이 돈 버는 일이다. 등등.


부양가족 없이 혼자 실거주 목적으로,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집을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회사까지 자차로 15분 내외, 대형마트와 백화점과 영화관이 자차로 10분 내외, 전 시내 이동이 자유롭다는 위치적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미 10년을 살았기에 동네 분위기는 더 파악할 게 없는데다 무엇보다도 이 부근에서 가장 저렴한 시세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더 잴 것도 없었다. 심리적으로 살짝 기댄 채 물리적으로 독립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머릿속은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날 만큼 기승전 독립이었다.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들어가 본 것도, 주택공사 디딤돌 대출 방법을 알아 본 것은 그 다음이었다. 일단 내가 감당할 만큼의 대출을 받아 갚아나간다는 전제가 있다면 아파트 매매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생각보다 간단한 과정이었다. 못 할 것도 없다 싶었다.


'아파트는 지금 거래하면 내일 바로 없어지고 그즉시 끝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바로 계약해야 해요.'


어느 문장 하나가 콕 박혀 내내 아른거린 날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정보로 머릿속으론 내부 인테리어까지 다 마쳐놓았는데 아직 첫 발 하나 떼지 않았다.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몇 개의 자료들을 정리한 뒤 부동산 매매 사이트를 열어 아파트 단지 이름을 검색했다. 우리 아파트의 매물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중개사무소 중 자신의 사진과 이름, 등록번호, 연락처를 공개해 둔 곳들을 추렸고, 여성 공인중개사가 대표인 두 개의 곳을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안녕하세요. 저 내일 상담받으러 가려고 하는데, 오후에 방문해도 될까요?"

'네 사무실에 있으니 언제든 편히 방문해 주세요'


그중 활발하게 거래를 진행 중인 한 곳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목표는 세웠고, 이제 실행만 남았다. 욕구(독립)는 필요(늘어난 식구 + 불편한 모녀 → 내 공간 필요)에 의해서 자라나고 욕구(독립) 그 자체로 생명력을 얻었다.


독립? 까짓 거 해보지 뭐.






대화를 통해 집을 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공인중개사는 벌써 여섯 번째 집을 보여주고 있었다. 같은 구조인데 리모델링을 한 집과 안 한 집, 이미 이사를 나간 집과 아직 거주자가 있는 집 등을 비교해주었다.


이삿짐이 모두 빠진 집의 휑뎅그렁함이나 모르는 사람의 방문을 멋쩍게 받아야 하는 집주인의 어색한 몸짓, 방의 크기며 채광을 체크하며 어쩔 수 없이 봐지는 남의 세간 살림 등은 일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집을 보인다는 건 생활을 보인다는 것이고, 생활을 보인다는 건 나를 보이는 일이다. 아직 이사 가지 않은 집을, 이 내밀함을 갖춘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은 좀 이상한 일이구나, 싶었다.


높은 층의 너른 창이 마음이 들면 가격이 부담스럽고, 구조나 평수가 적당하면 층수가 낮은 집들을 봤다. 어차피 매매한다면 전체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비어있는 집에 곰팡이는 슬어 있지 않은지, 확장은 되어 있는지, 소음이 있는지,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은 어딘지 위주로 파악했고, 그렇게 적당한 집을 두 개 골랐다.


"매수자가 000원을 원하는데..."


첫 번째 집에 공인중개사가 전화를 걸었다. 따로 요청한 게 없었는데 원래 나온 매매 가격보다 3백만 원 정도 적게 부른 금액이었다. 마지막에 가격이 조정되는 건 공인중개사의 역량인가 보다. 남편과 상의한 뒤 걸려 온 전화로 현재 매물 가격 그대로 받고 싶다는 의사가 전해졌다. 남향에 큰 대로를 끼고 있는 적당한 층의 집이었는데. 일단 보류.


두 번째 집에 전화를 건 공인중개사는 같은 말로 운을 띄웠다. '매수자가 000원을 원하는데... 네... 그럼요..' 대답을 하던 공인중개사가 나를 향해 눈짓을 했다. 된다는 뜻인가 보다. 돈의 단위가 커서 그렇지 어쨌든 아파트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판매되는 물건과 다름없다. 약간의 딜(Deal)도 가능한. 여긴 도로가 바로 인접해 있지 않아 조용하고 지금 살고 있는 동의 옆 옆이라 심리적으로 적응이 빠를 것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매도자가 처음 이 아파트가 생길 때 입주해 최근에 이사를 나가 등기부 등본이 아주 깨끗했다. 마지막에 3백만 원을 깎으니 원래 예상했던 가격과 얼추 맞았다.


"저, 이 집으로 결정할게요"


공인중개사는 다시 두 번째 집 매도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 계약 의사를 전달했고, 매도자의 계좌번호를 받은 뒤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가계약금은 보통 200만 원 선으로 매도자 명의의 계좌번호로 입금하게 되는데, 이건 말 그대로 계약을 위한 계약을 위함이다. 일종의 계약 선점. 이틀 후에 매도자와 직접 만나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시간 약속을 잡았다. 이 날 계약서를 작성하고, 매매 가격의 10~12% 정도를 계약금으로 입금하게 된다. 양자 간에 합의한 잔금 날짜에 맞춰 나머지 집 값을 치르고 등기 이전을 하면 매매 절차 끝. 내 집이 생긴다.


계약금은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남은 금액의 대출이 필요했다. 주택공사의 담보 대출 상품을 취급하는 주요 은행 중 집과 가까운 은행의 담당자를 소개받은 뒤 사무실을 나왔다.


태양은 여전히 작열하고 있었고,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의 기분을 다소 이해했다.


공인중개소에는 매매, 임대, 전세, 월세 등의 글씨가 크게 쓰인 하얀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에 작게 적힌 숫자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는 건 어른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공인중개소에 도착해 여섯 개의 아파트를 둘러보고, 그중 하나를 고르고,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계약 날짜를 잡기까지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건 '어디에 살 것인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도 그 어디가 어디인지 아는 어디.


본인, 매매계약서, 인감도장, 신분증, 인감증명서 2통, 등본 1통, 원초본 2통, 가족관계 증명서
재직증명서(직인 필), 원천징수 영수증 18, 19년(직인 필), 건강보험 득실 확인서 전체분, 공인인증서


대출에 필요한 서류 내용이 문자 메시지로 도착했다.


삐빅-


오래 세워 둔 차 안은 열기로 뜨거웠다. 먹고사는 일의 배경이 되어주는 곳에 왜들 그리 미래 가치를 얹어 값을 올리곤 하는 걸까. 원래대로라면 잔금을 처리하고 등기 이전을 해야 완벽한 내 집이 되는 것이지만 매도자가 잔금 처리 전에 리모델링을 시작해도 괜찮다는 편의를 제공했다. 이 내용은 매매 계약서에 명시하기로 했다. 이건 미래 가치를 어깨에 얹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관용일까.


햇살만큼 강렬한 체험을 한 오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목적지는 00동 주민센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