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독립 일기 03
변수 하나,
쓸데없이 높은 눈 : 비싼 제품을 먼저 봐 버리다
길고 얇은 다리에 매끈한 브라운 가죽, 적당한 두께의 팔걸이와 앉으면 스르륵 눈이 감길 것 같이 폭신한 쿠션, 옆으로 누워도 충분한 길이와 큼직한 허리 등받이까지. 이거다!
"뭐? 천이백만 원?"
어쩐지 딱 봐도 고급지고 딱 봐도 예쁘더라니. 김이 푹 샜다. 그래도 이건 천만 원대라 양반인가. 그동안 봐 왔던 소파들 중 그나마 저렴한 축이었다.
2006년 Peter Bonnen(피터 보넨)과 Kristian Byrge(크리스티안 브뤼게)가 론칭한 브랜드 Muuto(무토)는 뛰어난 미적 감각, 장인 정신, 실용성 등의 키워드로 정의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전통에 뿌리를 두며... 어느 한 블로그에서 브랜드 설명을 읽어보다가 실용성 부분에서 스크롤을 확 내려버렸다. 가격이 이미 하나도 안 실용적이라서.
진짜 부자들을 가르는 건 자동차도 백(Bag)도 아닌 가구라는 말을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자동차나 가방은 남들에게 보이는 만족이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는데 집은 오롯이 자기만족에 속하는 분야라고. 배우 유아인의 <나 혼자 산다> 방송 편이 세상 화제가 된 건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유아인의 일상 루틴을 보는 것 외에 고급스럽게 잘 꾸민 3층짜리 맨션을 보는 재미 덕이었다.
하얀 커튼 사이에 자리한 장식장은 USM(요즘 인테리어 좀 한다는 사이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다. 모듈 가구 유행의 정점에 있다), 커피 테이블과 스툴은 Vitra 제품이고 곰이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양의 등받이를 가진 소파는 Edra다(이건 찾아보니 거의 5천만 원이었다). 스툴은 Fritz과 Knoll, 거기에 디자인 조명이며 국내외 디자이너 예술 작품들까지. 아는 만큼 보이는 건 진리다. 매일 밤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디자인을 보고 있던 찰나에 마주한 배우 유아인의 집은 부럽다의 경지를 넘어선 완벽한 대리만족이었다.
처음부터 비싸고 좋은 브랜드들을 보고 나니 눈을 낮추기가 쉽지 않았다. 가구와 가전 전체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생각한 예산 전부를 쓰고도 소파 하나 혹은 식탁 하나를 겨우 살까 말까 할 브랜드들임에도 그랬다. SNS에서 많이 거론되는 브랜드들도 찾아봤으나 이마저도 대부분 하이엔드 브랜드 디자인을 카피한 것이면서도 가격은 애매하게 높은 것들이었다. 처음부터 중저가 브랜드의 가구들을 먼저 봤었어야 했는데.
이미 눈이 너무 높아져 적당한 의자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현실과 타협하는 일. 내게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내 환경을 생각했다. 첫째, 내 예산. 이 예산 범위 내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가구와 가전의 구색을 갖춰야 한다.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라 사는(Live)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무리해서 좋은 가구를 넣는다 한들 그런 좋은 가구들이 자리할 만한 집이 아니다. 고급진 대리석 바닥도 아니고, 좁고, 무엇보다도 불편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 비싼 소파에 뭘 흘리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무섭다. 소파 위가 아닌 소파 밑에서 생활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상황이 불 보듯 뻔하다. 셋째, 처음부터 모든 걸 다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상은 높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이상이 제 아무리 높아봐야 하늘, 바로 현실 아래인 것.
해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었다.
요즘 집 꾸미기의 패러다임을 이끈다는 '오늘의 집'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눈 빠지게 둘러봤다. 화이트 벽지에 우드톤, 하얀 속 커튼과 카펫. 유행처럼 비슷비슷하게 꾸며놓은 집들은 비슷비슷하게 예뻤고, 다음 집을 보면 그 전 집이 기억이 안나는 유사성들이 가득했다.
1천만 원을 들여 셀프 인테리어 한 거랑 5천만 원을 들여 전체 인테리어 한 거랑, 뭐가 다르지?
아파트란 거주 형태에서 드라마틱한 인테리어란 건 없었다. 좋은 자재를 썼느냐, 깔끔하게 마감하였느냐, 색감에 신경을 썼느냐, 어떤 톤의 가구를 골랐느냐에 따라 물론 각각 느낌이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거실과 거실에 연결된 부엌, 안방과 작은 방, 드레스룸이란 비슷한 구조에 아파트 특유의 낮은 층고와 규격화된 창문의 크기 등의 디폴트 값이 존재했다. 집을 고치는 데 들인 비용과 상관없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 까닭은 아파트 인테리어가 가진 '기본적인 틀을 다듬는' 성격 때문이었다.
"계속 보다 보니까 내가 어떤 센스를 발휘해 뭘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집 분위기가 결정될 것 같아. 비싼 것도 아니고, 대단한 고침도 아니고"
"그렇지. 또 살면서 이것저것 고쳐나갈 수 있는 거니까 큰 것만 일단 해놓으면 편할 거야"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사진을 참고용으로 살펴보며 내가 마음 주고 정 주며 살 수 있는 집은 무얼까 생각했다. 퇴근해 집에 들어와 협탁 위 조명을 켜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아차 싶었다.
내겐 여행이 있었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사 온 아몬드 나무 액자가 있고, 일본 나오시마 섬에서 사 온 쿠사마 야요이 호박 포스터와 체스키 크룸로프 에곤 쉴레 뮤지엄에서 사 온 자화상 포스터가 있고, 시카고 미술관에서 사 온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림이 있다. 그 외에도 수 가지다. 모두 마땅히 둘 곳이 없어 돌돌 말아 지관통에 넣어놓거나 베란다에 내어놓은 채 방치돼 있던 것들이다. 여러 개의 액자 프레임을 구입해 미술관처럼 걸어놓을 수도 있겠다.
더 붙일 곳이 없어 책상 서랍에 가득한 여행지 마그넷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고, 각 도시별로 꼭 하나씩 사 들고 왔던 스타벅스 시티 머그들은 한쪽에 모아 컬렉션처럼 만들어놓아도 좋을 것 같다 싶다. 새로 사지 않아도 충분한, 그동안의 여행과 삶이 녹아있는 소품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이거면 충분하잖아.
카피한 디자인 대신 독자적인 디자인을 내놓는 사이트들도 여럿 찾아두었다. 장식장은 포인트로 전혀 고를 것 같지 않은 튀는 색깔로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다. 빈티지한 패브릭이 매력적인 빈 백 스툴은 소파 옆에 두고 발받침으로 쓰면 좋을 것 같고, 1인용 소파 하나쯤은 독특한 디자인인 걸로 골라봐도 괜찮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동안 어디서 산 지 기억도 안 나게 사다 날랐던 소품들의 쓰임새를 고민해봐야지. 내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하나씩 만들어가 보자.
무토나 USM, Artek, Louis poulsen이 없으면 어때. 막연하게 믿고 있는 내 센스 한 번 드디어 발휘해 볼 때가 왔다.
변수 둘,
내가 모르는 내 명의 : 네? 제가 집이 있다고요?
집 근처 카페에서 인테리어 대표와 만나 계약을 진행했다. 실측 이후 다시 만나 미팅을 했었는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가 아닌 함께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트렌디하면서도 타협 가능한 합리적인 견적 가격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계약서 작성을 마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 10%를 입금했다. 급하지 않으니 넉넉히 한 달을 잡고 꼼꼼하게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한 스텝을 넘었다.
그 사이 전입신고도 완료했다. 미혼 1인 가구에 따른 혜택이 포함된 디딤돌 대출이기에 단독 세대주로 이루어진 주민등록등본으로 수정해서 제출하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점심시간 짬을 내 주민센터에 들러 세대주 분리 독립 신고를 한 뒤 내 이름 한 줄만 들어있는 주민등록등본 서류를 뗐다. 파란색 등본에 유일하게 내 이름만 낯선 주소 아래 등록되어 있는 걸 보니 독립이 진짜 실감 나기 시작했다.
다시 은행을 찾았다. 새로 뽑은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한 뒤 담당자와 함께 주택공사 디딤돌 대출 작성 내용을 다시 한번 입력했다. 서류를 수정하게 된 거라 지난 대출 신청 건은 불승인으로 처리되어 다시 신청하는 셈이었다. 이미 며칠이 흐른 터라 잔금일에 맞춰 대출이 나올지 걱정된다고 하자 이미 주택공사 담당자가 인지하고 있는 건이고 본인이 계속 체크 중이니 걱정 말란다. 그나마 다행히 잔금일을 촉박하게 잡아놓지 않아 다행이었다.
에어컨을 스탠드로 할지 벽걸이로 할지, 드레스룸을 붙박이장으로 할지 시스템장으로 할지, 포인트 색깔을 줄 장식장은 유리 장식장으로 할지, 낮은 서랍장으로 할지 온통 머릿속엔 새 집과 관련된 생각이 가득했다. 매일 새로운 가구 사이트를 들어갔고, 가구 배치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다시 짰다. 음식을 잘해 먹는 스타일이 아니니 냉장고는 욕심부리지 않고 작은 걸로, 세탁기는 아무 빨래가 막 넣어 돌릴 수 있는 통돌이로 결정했다. 이걸 픽스하는 데에만 며칠이 지났다. 매일 새로운 고민이 생기고 매일 새롭게 구입할 품목이 늘었다. 결혼 준비도 이렇게 빡세진 않을 듯싶은 날들이었다.
"고객님, 큰일 났는데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
이 시국에 회식을 고집한 선배 덕에 숙취까지 얹어 몸이 더 천근만근한 오후에 걸려 온 은행 대출 담당자의 전화였다. 막 이동 중인지 숨이 찬 목소리였다. 불안한 예감에 목 옆으로 열이 훅 끼쳐 올랐다.
"디딤돌 대출 결국 불승인 났어요. 혹시 00동에 상속받은 집이 있으세요?"
00동의 주택이라면 지금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 살았던 주택이다. 함께 살던 할머니는 계속 주택에서 살겠다고 고집해 집을 따로 팔지 않고 둔 채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그 집에, 내 명의라고?
"00 동이라면.. 집이 있긴 있는데 제 명의 일리가 없는데... 엄마 명의로 돼 있을 거예요"
"이게 고객님 이름으로 공동 명의로 돼 있어요. 한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사전에 들은 적이 전혀 없었고, 내 명의의 재산이란 게 당연히 없을 테니 이와 관련된 서류 한 번 떼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태연하게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진행했다. 엄마와 사이가 소원해져 제대로 독립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혼자 이만큼의 과정을 진행해 왔는데. 소통의 부재가 결국은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무주택자에게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주택공사 디딤돌 대출 상품은 이로써 물거품이 됐다.
다시 대출 담당자와 통화했다. 방법은 있었다.
하나는 주택공사의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는 것. 이것은 기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2년 안에 처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지만, 엄마는 그 집을 팔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궁극엔 그 주택을 헐고 그 부지에 새로 집을 짓는 것이 꿈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이 방법은 패스.
또 다른 하나는 은행 담보 대출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은행 자체 상품이다 보니 대출에 조건이 많이 붙었다. 급여 통장 설정, 한 달 몇 회 이상의 자동이체, 모바일 뱅킹 사용, 적금 가입 등 보통 여섯 가지 정도를 가입하거나 사용해야 주택공사와 비슷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이 가능했다. 시중 금리가 낮아진 만큼 은행 나름의 자구책을 찾은 묶음 상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은행 대출은 주택공사 디딤돌 대출보다 심사 기간이 짧아 잔금일을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은행 담보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담당자와 만나는 미팅을 다시 잡았다.
하, 내가 모르는 내 명의의 재산이라니. 이거 울어야 되나 웃어야 되나.
집에 돌아오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독립 얘기도 제대로 안 꺼냈던 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골라야 할지 몰라 입만 뻥긋 대다 닫았다. 이제 와서 다시 내 명의를 빼고 다시 디딤돌 대출을 신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두어 봐야 무엇하랴.
최근 아시아 경제에서 내놓은, 재밌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싫은 직장이 평생직장으로" 코로나 19로 발 묶인 직장인. 코로나 19로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젊은 세대 또한 모험을 시도하기보다는 안정적인 환경을 추구하게 됐다는 분석을 내놓은 기사였다.
집 값의 70%의 대출이 가능한 디딤돌 대출 대신 60%까지 가능한 은행 담보 대출 덕에 혹시 몰라 신용 대출의 한도를 은행 담당자와 함께 확인해봤다. 생각보다 아주 높은 숫자가 눈 앞에 나타났다. 신용 등급이 좋아 최종 담보 대출의 금리도 디딤돌 대출 금리와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거라고도 미리 확인했다. 지금 회사를 쉬는 기간 없이 8년을 넘게 쭉 다닌 대가로 생긴 신용, 그 미래의 가능성으로 독립이 되는 거였다. 싫은 직장이 평생직장으로. 그 기사 제목이 따라오는 건 우연이 아니겠지.
변수는 어딘가에 있다. 그러나 그 변수를 넘어설 나만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럼에도, 어찌 됐든. 독립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