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독립 일기 04
투투 둑- 투둑-
계산기 숫자 버튼을 누르는 검지 속도가 빨라졌다. 일시불로 결제한 가구 값을 더하고, 견적 받은 가전 값을 더하고, 리모델링 잔금 금액을 더하고.
"하아... 뭐가 이렇게 많아..."
기 지출한 금액에 몇 가지의 추가 금액을 더하니 숫자가 훅 늘었다. 시기에 맞춰 만료되는 적금 하나와 올초에 결제했던 미국 콘서트 티켓 값 환불 금액으로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는 다음 달 급여날에 겨우 맞춰 낼 수 있겠다 싶다. 당초 지출로 예상했던 금액보다 0백만 원 가깝게 는 금액이다.
내가 생각한 독립은 아주 간단했다. 집을 구입하고, 집을 수리하고, 살림살이를 채우고, 그 집에서 즐겁게 사는 일. 집을 구하는 데엔 대출이 많은 역할을 하니 이 부분을 빼고 생각하면 집을 수리하고 살림살이를 채우면 되는 일쯤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항상 현실은 늘 상상을 비켜간다.
오늘은 집에 연결할 와이파이 결제 금액을 알아봤다. 그동안 공짜처럼 여긴 B-TV와 와이파이도 이제 내 지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 최대한의 혜택을 받고 설치하더라도 발생하는 금액. 숨만 쉬어도 숭덩 빠지는 생활비가 이렇게 또 금액을 늘렸다.
이번 편은 독립하기 전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해 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지갑에 구멍이 난 것 같은 요즈음,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독립,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1. 부동산 중개비
자,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방문한 건 여름의 초입 어느 오후였다. 사무실에 들러 내가 보고 싶은 집에 대해 설명하고 곧이어 여러 집을 둘러본 후 마음에 든 집을 골랐고 그 날 바로 가계약을 했다. 이 과정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방문한 건 습기 높은 어느 금요일 저녁. 집주인과 만나 아파트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의 10%를 송금하기 위해서였다. 약속된 시간에 만나 프린트된 표준 계약서에 쓱쓱 도장을 찍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을 보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계약을 마치고 나오기까지 약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잔금을 치르는 날 한 번 더 들르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집을 구매하기 위한 과정으로 공인 중개사 사무실을 방문한 건 이렇게 딱 두 번이었다. 그러나 중개에는 비용이 발생했다.
'계좌번호는 이거고요, 잔금 전까지 입금하면 돼요'
매매 계약서에는 금액만 나와 있다며 계좌번호를 적은 메모가 추가로 건네 졌다. 택시도 직접 전화해 부르지 않고, 배달 음식도 간단히 어플을 통해 주문하면서도 왜 부동산 중개비를 애초부터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돈을 버는 곳은 택시도, 음식점도 아닌 플랫폼 회사라는 걸 생활의 변혁을 통해 알아왔으면서 공인 중개사에 대한 중개료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독립을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얘기하다 이 중개료에 대해 말했더니 지인이 그랬다. 본인 친구 중 한 명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뒤 집값 높은 서울의 모 동네에 사무실을 열어 중개료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중개료는 아파트 매매가와 연동되는 비율이기에 처음부터 단가가 높은 곳을 영민하게 찾았고, 높은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도 남는 높은 수입을 벌고 있단다.
'중개료 00만 원 입금했습니다.'
급여날, 나는 제일 먼저 중개료를 입금했고 확인 메시지를 보냈다. 기간 내에 나가야 할 돈부터 처리해야 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명기한 것처럼 곧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될 것도 확인 요청했다. 직접 발품 파는 수고스러움을 대신하는 대가라고 하기엔 발품 수가 좀 많이 적었다는 생각을 나는 끝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다.
덧)
아파트 등기 이전이 마무리되면 등기 이전 후 60일 이내에 취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일단 당장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목록에는 빼놓았으나 아파트 매매가에 연동되는 비율에 따라 산정되는 취득세 역시 매매에 따르는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독립은 말 그대로 '돈, 돈, 돈'의 연장이다.
2. 인테리어 추가 비용
하나. 이왕이면,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야 한다. 금액 조금 아끼려다 내내 거슬리는 부분이 발생할 수 있다.
둘. 어차피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 할 때 해야 한다. 나중에 수정하는 것이 훨씬 큰 비용이다.
인테리어 추가 비용은 모두 이 두 마음으로부터 시작이다.
내가 독립할 집에서 도무지 포기가 안 되는 딱 한 가지를 뽑자면 그것은 욕조다. 아이가 있는 집이 아니면 대부분 욕조를 떼고 샤워 부스로 간략하게 시공하는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게도 그렇다.
어떤 경험은 삶을 바꾼다. 몇 해 전, 혼자 떠난 런던 여행에서 나는 이틀 밤을 샹그릴라 앳 더 샤드에서 묵었다. 여행을 할 때 하룻밤 이상은 꼭 좋은 호텔에서 묵고, 한 끼 이상은 미슐랭 혹은 그에 버금가는 식사를 먹는다는 내 여행 신조에 샹그릴라 앳 더 샤드는 위치와 뷰, 서비스 모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특히 통유리 아래로 템즈강과 타워 브리지, 런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욕실이 최고였다.
그 날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거품을 풍성하게 푼 욕조에 기대 샴페인을 마시며 내려다보던 런던 야경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풍경, 어떤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다. 나는 견적 외 사항으로 끝이 라운드로 부드럽게 빠진 스탠딩 욕조를 추가했다. 멋있는 뷰는 없지만 퇴근 후 따뜻한 물을 받아 잘 칠링된 샴페인 한 잔을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독립의 환상은 00만 원의 추가 비용을 순식간에 발생시켰다.
내가 독립할 아파트는 좁은 평수에 비해 방에 세 개인, 그러니까 나름의 구색을 갖추려고 노력한 구옥이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방들이 좁다. 책장 두 개에 탁자 하나를 넣으면 꽉 차는 방에선 글을 쓰고 읽을 것이고, 한쪽 벽에 옷장을 세우면 끝일 방에선 매일 아침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작은 동굴이 될 것이다. 침실은 상대적으로 조금 크지만 잠을 청할 때 외엔 잘 들어가지 않을 듯싶다. 질 높은 수면을 위한 장소로서의 기능에 집중할 예정이라 서다.
결국 이 집에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곳은 거실. 스탠딩 에어컨과 55인치 텔레비전, 소파는 내 집콕 와식 생활의 전부가 될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들어야 할 공간이라서 나는 거실에 들어가는 작업을 추가하기로 했다. 매립등으로 조명을 넣을 천장과 베란다 확장 공사로 넓어진 벽엔 목 작업을 추가해 깔끔하게 마감하고, 현관문에서 거실로 바로 이어지지 않게 중문을 설치하기로 했다. 와중에 중문은 투명한 유리 문의 스윙 도어로 골랐다. 기본적으로 많이 고른다는 3중 연동 중문은 취향에 맞지 않아서였다. 쉽게 말해 추가에 추가 금액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00만 원. 또 추가금이다.
리모델링을 위해 처음 받아보는 견적은 내 예산의 8~90% 선에 맞춰야 한다는 걸 몰랐다. 공사가 시작된 뒤 의외의 변수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데다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면서 자연스레 욕심이 생겨 추가할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첫 견적을 내가 가진 예산에 딱 맞춰 받았고 그래서 예상치 못한 추가 지출이 많이 발생했다.
인테리어 리모델링은 처음부터 내 비용에 맞춰 시작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 사람은 역시 경험해 봐야 안다. 내 신조에 방점 하나를 또 찍었다.
3. 입주 청소
6월 말부터 시작된 리모델링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지지부진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어 자재 반입에 난항을 겪었지만 처음부터 넉넉하게 잡아 놓은 일정 덕에 예정한 공사 마감일에 맞춰 끝낼 수 있게 됐다. 그간 대출 심사도 전부 완료됐다. 공사 현장은 매일 같이 사진으로 받아 보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러 눈으로 확인 중이다.
젊은 대표 덕에 현관에 깔 타일 하나, 욕조 스타일 하나, 주방 싱크 손잡이 하나 일일이 내 컨펌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거의 반 전문가가 다 되었다. 자재를 직접 안 날랐다 뿐이지 마음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기분이라 집들이 약속도 많이 잡아두었다. 하루빨리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에어컨도 없이 끈적한 장마 기간에 공사를 하느라 고생일 현장에 또 방문했다. 때맞춰 배송 온 도어록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이전 주인이 요즘 보기 드물게 열쇠를 사용하여 새 도어록을 추가로 구매해야만 했다. (아마 이번 편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추가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강마루가 깔린 집을 보니 이제 정말 고지가 가까워졌구나 싶다. 내일과 모레 필름 작업과 도배가 끝나고 나면 약 한 달 간의 공사의 9부 능선이 넘어간다.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 음료를 나눠드리고 마지막으로 주방 싱크대 위치를 확인했다.
"입주 청소는 언제 하실 계획이세요?"
밥솥장은 냉장고 옆 아래쪽으로 넣는 것으로 확인하고 나니 대표가 내게 입주 청소에 대해 물었다.
"입주 청소를 꼭 해야 할까요? 공사 마무리되는 날 이후로 일주일 휴가를 내서 제가 직접 청소하려고 했거든요."
"제가 제일 후회하는 게 저희 집 공사하고 난 뒤 입주 청소를 안 한 거예요. 공사 먼지가 생각보다 많고, 치워도 치워도 먼지가 구석에서 계속 나오더라고요"
마루를 밟고 지난 신발 자국들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천장부터 벽, 문틀에 바닥까지. 이걸 혼자 치우기엔 무리일 것 같다. 가전과 가구가 들어오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해놓지 않으면 정말 말 그대로 매일매일 먼지와의 전쟁일 수도 있겠다. 도배가 마무리된 뒤 다시 한번 현장에 들르기로 한 뒤 집을 나서며 바로 입주 청소 견적 요청 글을 올렸다. 평당 1만 원 정도는 잡아야 한다더니 비슷비슷한 금액이 적시된 답장이 여럿 도착했다. 그중 제일 후기가 좋은 업체 한 군데에 전화를 해 입주 청소 예약을 마쳤다.
그냥 쓸고 닦으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던 청소마저도 본격적으로 해야 했다. 입주 청소 00만 원. 이 역시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다.
덧)
빈 집에 새 짐을 채워 놓는 나 같은 경우엔 입주 청소만 하면 끝이지만, 기존 짐을 옮길 경우엔 이사 비용이 추가된다. 이삿짐 차의 크기에 비례하여 금액이 책정되고 무게 있는 짐 유무, 사다리차 사용 가능 여부 등 이사 환경에 따라 추가 옵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짐 옮기는 데에도 돈이 든다. 정말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4. 최신 가전
당장에 필요한 가전이 무엇일까. 다이어리를 꺼내 흰 면을 펼쳤다. 먼저 평소에 사용하고 있는 가전 리스트를 쭉 적었다. 이렇게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나. 다음엔 색이 다른 펜을 꺼내 이 중 제일 급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동그라미를 쳤다. 생각보다 동그라미는 많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색의 펜으로 동그라미로 체크된 것들 중 미리 결제를 해 예약 배송을 받아야 하는 것에 추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른 색의 동그라미가 두 개 겹쳐있는 것은 딱 네 개였다. TV,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왜 없을까..."
웬걸. 기본 스탠드 에어컨이나 양문형 냉장고, 통돌이 세탁기 등 내가 생각했던 가전들은 사이트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냥 시원하고, 보관 잘 되고, 찬물에 세탁 잘 되는 기본형 가전들은 무풍 청정 갤러리 디자인과 내가 원하는 색깔을 추가하는 비스포크와 세탁에 건조가 추가된 세트로 진화되어 있었고 진화된 만큼 비싸져 있었다.
어릴 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주택에서 지금의 본가로 이사한 게 10년 전쯤. 내가 생각했던 세탁기와 TV 가격은 그때 엄마와 같이 쇼핑을 했던 어느 대형 마트 내 매장가로 멈춰있었던 거였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했던 금액에 맞는 건 단연코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러다 각자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사이트나 인스타그램 등의 게시물을 보다 보니 최신 가전이 주는 인테리어 효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TV 장식장을 없앤 스탠드형 TV면 집을 훨씬 깔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고, 도어마다 색을 다르게 입힌 냉장고 하나면 다른 장식품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구구절절한 제품 사양 설명보다 이 생각 하나가 '이왕이면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어차피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 살 때 사자'는 그때의 마음을 다시 발동하게 했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 가전 매장에 방문해 네 가지 가전에 대해 견적을 받았다. 손목이 시리게 가구를 고르고 골라 적당한 선에 타협을 하며 비용을 낮춘 게 무색할 정도로 추가 비용이 훅 생겼다. 1등급 가전 구입으로 일부 환급이, 매장 자체의 사은 행사로 구입가의 일부가 환급될 예정이나 역시 부족했던 현실 감각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이외에도 등기 이전 시 발생하는 법무사 비용, 앞으로 매달 들어갈 아파트 관리비와 대출금 이자, 정수기 렌탈료와 기타 비용까지.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는 어른들의 마음을 뼛속 깊이 와 닿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 모든 걸 알았으면 이처럼 무모한 시작을 하지 못 했을 수도 있을 테니.
이 모든 예상치 못한 지출을 넘어서 독립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그러면 된 거지 뭐.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