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게으른은?
게으름에 대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님이 뭐가 게을러요‘다. 뭐지? 게으르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래, 나 게으르다!‘하고 시인하는 심정으로 낸 만화인데 이젠 또 뭐가 게으르냔다. 사실 이건 ‘인스타그램’에서 ’창작물‘을 ‘연재’하는 데서 생겨난 오해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만화로만 가끔씩 나를 만나다 보니 내 평소 모습 같은 건 알 리가 없었고 그들에게 나는 ’게으름‘에 대해 ‘부지런히’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걸 계기로 내가 정말 부지런뱅이로 각성한 것이냐?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그래왔듯 일관되게 게으른 중이다. 맨날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연재 주기도 자유분방 하다. 그뿐인가. 방금까지도 쇼파에 누워서 두 시간 동안 숏츠를 봤고 내일까지 마감인 자료는 손도 안 댔다. 어떠냐, 나 진짜 게으르지? 아니 그런데 이렇게 내 게으름을 구구절절 증명하고 있는 것도 웃긴다.
‘그게 뭐가 게을러’
꼭 나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게으름에 대한 분분한 논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성실이 최고 미덕 쯤으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당신은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에요’라는 반어적인 칭찬이 되기도 한다. 통화할 때 ‘요즘 바쁘시죠?‘를 덕담 삼아 대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정말로 서로의 게으름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면 항상 에너지가 부족해서 무기력한 A는 쉽게 일을 벌이고 빨리 질리는 B를 보고 그렇게 의욕이 넘치는 건 게으른 게 아니라고 한다. 천성이 산만해서 일이 매번 엉망이 되는 C는 게으른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D를 보고 퀄리티에 대한 성실을 부러워 한다. 각자가 가진 컴플렉스에 따라 게으름의 뜻을 다르게 정의하게 되는 거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어떤 것은 게으른 게 맞다고 인정하지만 어떤 것에는 물음표가 떠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게으름이란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할 일을 안하고 있다‘는 결과값만 제외하면.
나는 어쩐지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뭐 꼭 부지런하면 행복하고 게으르면 불행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이상과 결핍의 차이점이라는 데서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이 문장을 딴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는 게 있다는데 거기서도 그 두 자리에 이런 식으로 상반되는 걸 넣으면 뭐든 의미가 성립된다고 했다) 이상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정답이 정해져 있어서 모두 엇비슷한 모양으로 귀결되지만, 결핍들은 정답도 없고 애초에 다 틀려먹었으니까 각자의 해설만 있는 거라고. 나는 이게 너무 맞는 말 같다. 왜냐면 각자 자기가 게으르다는 자책만 하고 있는데 서로 이유는 다 달라서 내가 진짜 게으른 거라며 ‘게으름 배틀’을 붙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불행 배틀’이 그렇듯, 그런 배틀을 열심히 붙는다고 부지런해진다거나 행복해지는 일은 없다. 그냥 더 게으르고 더 불행한 사람만 있을 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정한 게으름이란 무엇인가라거나 누가 진짜 게으른가하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거다. 게으름은 태도나 정의보다는 각자의 결핍이나 기질의 문제에 가깝고 그런 건 ‘미라클 모닝’이나 ‘게으름 부수는 법’ 같은 걸로 드라마틱하게 박살 나는 게 아니다. 만약 박살 난다고 해도 그건 그런 척하는 임시방편에 가깝지, 결국 자기파괴로 이어질 게 당연하다. ”새롭게 다시 태어날 거야!“ 자기부정에서 시작한 동기부여는 요요현상이 왔을 때 이전보다 더 심한 자기혐오로 돌아올 테니까.
내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까닭은 나 역시도 그런 시도의 부작용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엎어져 있는데 사용했고, 그 원인 제공은 게으름 보다는 자기혐오로 인한 좌절감 쪽이 더 많았다. 쓰다 보니까 말이 어려워졌는데 어쨌든 나는 자기 자신과 사이 좋게 지내기로 했다고. 자꾸 부수고 혐오하고 정색하고 그러면 되겠나. 더 나은 내가 되는 일에 있어서 더 중요한 건 정답 맞추기 보다는 자신과 친해지는 일일테니까. 우웩, 너무 소름돋게 뻔한 말을 해버렸다.
심리학자들은 기질이라는 게 3살이 되기 전에 다 결정이 된다는데 이제 와서 그걸 바꾸기엔 나는 거기서 30살이나 더 먹었고 심리학자들보다 똑똑할 자신도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애초에 게으름 극복하는 방법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가진 결핍의 모양을 더 잘 알고자 쓰여졌다. 어떤 때에 특히 게을러지는지, 어떤 조건에서 일이 지체되는지,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나의 게으른 순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일이든, 자기계발이든, 긍정적인 마인드든.
그래서 나는 내 게으름을 해체해보기로 했다.
‘게으름’이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려진 각기 다른 그 안의 결핍과 이유들을. 나는 크게 총 다섯가지의 모양으로 나의 게으름을 만났다. 물론 여기 포함되지 않은 다른 요인의 게으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차차 추가하도록 하자.
앞으로 나올 에피소드들이 유독 당신과 닮았다면 그건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당신의 게으름 친구일지도 모른다. 이 글이 그 친구와 묵은 오해를 푸는 계기가 되거나 평화롭게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 어떤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무튼 다들 이 중에 각자 맞는 거 찾고 서로 뭐가 게으르냐고 고만 싸워라.
*글별 게으른 유형은 글 최상단 섬네일에 도형으로 표현해두었습니다.
권태형 게으른 : ⬯ 회피형 게으른 : ○ 산만형 게으른 : ▿
합리화형 게으른 : □ 무기력형 게으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