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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 Oct 02. 2024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여덟번째 핑계 : 방전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제목에도 썼지만 이런 날은 몇 번의 동어반복이라도 허용한다. 오늘따라 글이 잘 안 써진다거나 날씨가 지나치게 덥다거나 그외 의욕을 앗아가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만났다거나 하는 이런저런 꼬릿말을 달 필요 없다. 그냥 이유 없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있지 않은가. 아아, 정말 그런 날이 있다. 존재만 하는 존재로 존재하고 싶은 날. 어떤 의식을 해야겠다는 의식 없이 무생물처럼. 걔들은 간혹 의식 대신 버튼이 있다. 켜면 움직이고 끄면 멈추는 그거. 나도 그렇게 버튼 하나 눌러서 모든 의식을 끄고 정지한 상태로 있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무생물도 미생물도 아니고 다세포를 가진 약동하는 생물이라 가만히 있어도 의식이 쉴새없이 흐른다. 가령 글에도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 있다. 지금 쓰여지는 이 글처럼. 사실 정말 그렇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 아무 것도 안 해보면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안다. 하다 못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아무 느낌도 느끼지 않는 느낌이 느껴진다. 음… 정신이 혼미해지는군. 봐라. 아무 것도 안하려고 하자마자 이렇게 격렬하게 무언가를 해버렸다. 지금 꽤나 철학적으로 말한 것 같은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되는 대로 지껄인거다.




한때 명상에 꽂혔던 적이 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때 당시 난 퇴사든 이사든 이별이든 뭔가 잔뜩 헤어지고 있던 중이라 정신 건강이 좋지 못했고, 그냥 명상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무턱대고 유튜브에 명상 하는 법 같은 걸 쳐보니 가이드 영상이 많았다. 아무 거나 켠 다음 거기서 시키는 대로 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얀 무드라(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위를 보게 놓는 것)를 하고 눈을 감았다. 할 때 마다 매번 다른 영상을 눌러봤지만 선생님들의 대사는 거의 비슷하게 이런 식이었다. ‘명상은 어떤 생각을 깊이 하는 일이 아니라, 반대로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일입니다. 모든 생각을 비우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코끼리가 또렷해지는 것처럼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친듯이 아무 생각이나 마구 떠올랐다. 호흡을 의식하다보니 숨도 엇박자로 쉬게 된다. 한참 바보같이 헐떡거리며 괴로워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다 예상했다는 듯 말을 덧붙인다. ‘이런 저런 생각이 올라온다면 그 생각들을 멀리서 지켜보시다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게 내버려두세요.' 그러자 이번엔 생각 하나하나를 절대 흘러가지 못하게 꼭 붙잡고 늘어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명상 선생님이 유튜브 안이 아니라 내 앞에 있었다면 넌 답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을 거다. 난 어릴 때도 유독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애였다. 명상은 얼마 못 가 접었다.





인간은 청개구리 심리가 디폴트로 깔려 있다. 좀 더 있어보이게 말하면 칼리굴라 효과라던지 리액턴스(reactance) 효과라고도 하는데 그닥 와닿지도 않고 청개구리가 익숙하니까 청개구리로 하겠다. 사실 실제 베짱이랑 게으름은 별 상관 없는 것처럼 실제 청개구리도 반발 심리랑 별 상관 없단다. 어쨌든, 인간 심리란 뭔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거다. 몰래 훔쳐먹는 군것질이 더 맛있다거나 시험기간에 보는 숏츠가 더 재밌다거나 하는 게 다 그렇다. 이건 작용 반작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심리다. 압박감이 만드는 반발감. 당연하게도 압박감이 강할수록 반발감도 강해진다.


반대의 예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은 ‘그러니까 더 하기 싫어지는데?’ 같은 반발을 만든다. 심지어 그게 원래 내가 좋아하던 것일지라도. 그런 이유로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서로 합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통제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성격이 아주 더러운 청개구리로서 틈만 나면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격렬하게 개굴거렸다. 일이 마구마구 쏟아질 때면 아주 쉬운 일이라도 자꾸 미루고만 싶어졌다. 그 마음이 투정과 무기력 그 사이, 아니면 아예 다른 무언가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출처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분명 푸시를 받는다든지, 컴플레인이 예상된다든지, 데드라인이 가까워졌다든지 하는 어떤 압박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소원대로 아무 것도 안 하고 쉬어봤자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그 다음에는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어질 뿐이다. 그건 아무 것도 안하는 것과 달리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라서 그냥 바보같은 표정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결국 미래의 내가 더 괴로운 표정으로 똥을 치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 마음대로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음껏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은 기대와 달리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불안감은 둘째 치더라도 그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 그렇게 손을 못 놓던 유튜브도 막상 각 잡고 찾아서 보려니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게 없고, 알람 없이 한 번 실컷 자보려고 해도 얼마 못 가 금세 똘망똘망해진다. 나의 유희들이 시시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압박감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이제 어떤 압박 없이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걸까?


아무 것도 안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끝나버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격렬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이쯤 되면 나도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칼리굴라든 청개구리 이야기 글쓴이든 빨리 나와서 해명을 하든가 해결책을 내놓든가 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청개구리 이야기 결말이 어떻게 됐더라. ‘청개구리는 비가 올 때마다 ‘엄마 말 잘 들을 걸’ 후회하면서 펑펑 울었답니다. 무력하게도요.’ 이야, 애들 동화 치고 새드엔딩이 잘 없는데...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랑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사람을 초대해서 가정식 떡볶이를 차려주고 싶다. 그러고서 우리 중 누가 가장 무기력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지. 오, 생각만 해도 세상 힘 빠지는 식사다. 그렇지만 격렬하게 토론하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조금 기력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 자리에선 ‘그러니까 정신 빠짝 차리고 열심히 삽시다!’ 같은 말은 금지다. 그런 건 힘든 사람한테 ‘힘 내‘라는 응원 같이 별 도움도 안 될 뿐더러 청개구리들의 반발심을 자극해서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들테니까. 그냥 내비 둬라. 어느 정도 울다 보면 제 풀에 지쳐서 뭔갈 하러 갈 테다. 자연스럽게, 비가 내리고 그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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