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아
한병철 읽기(9), 고통의 간지, 10월 1일 단상
그녀의 일상
흩뿌려진 미스트는 그녀의 모공 사이로 스며든다. 피부에 닿지 못한 미세한 방울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문득 그녀는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화장대 서랍을 연다. 어디에 뒀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찾곤 한다. 무엇을 잘못한 걸까. 그녀의 일부가 조금씩, 어딘가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나이를 먹는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녀는 베개 밑, 핸드백 속, 에어 드레서 안을 차례로 헤맨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핸드폰이 드레스룸, 자신이 앉았던 스툴에 올려진 것을 보고 허탈해졌다.
거울을 본다. 볼살이 점점 빠지면서 건조해진 피부는 탄력을 잃었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느리게 얼굴을 어루만졌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은 달팽이에서 추출한 고수분 크림으로도 펴지지 않는다. 잘못한 것도 없이 벌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늘어진 면티의 왼쪽 목을 잡아당겼다. 쇄골 아래 희미한 레터링이 보인다.
'Non je ne regrette rien'
철없는 시절 새겼던 타투는 레이저 시술로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화살에 뚫린 하트가 있는 치골과 오른쪽 엉덩이 위에 붉은 장미 등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실수는 감당하기 힘든 채무로 남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와 함께 상환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큰돈을 빌리고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 모든 것이 안갯속처럼 모호한 느낌이다. 어떤 것도 매듭지을 수 없는 애매함 속에 그녀의 일부는 계속 흩어진다.
'고통은 한 방울씩 삶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결국 삶을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인공적인 차단막을 우회한다는 것이다.' -융어
셀카의 뒷면
그녀가 비운 헤네시 XO는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다. 링 라이트가 달린 스탠드가 양 옆으로 켜진 식탁에서 '처음처럼' 그녀는 소주를 들이켠다. 핸드폰은 밝은 빛을 뿜고 있다. 코냑 병과 고다 치즈가 담긴 로열 코펜하겐 접시를 배경으로 찍은 셀카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려져 있다. 그녀는 활짝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다가 문득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허기가 져서 뭔가 먹고 싶다. 냄새나는 고다 치즈를 좋아하지도 않아 입에 대지도 않는다.
목이 몹시 마르다. 유리병에 담긴 물을 따르다가 식탁 위로 쏟아버렸다. 테이블을 타고 흐른 물은 의자에 놓여 있던 택배 상자를 흠뻑 적셨다. 그녀는 치울 생각도 없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언제 주문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뭐가 들어있지 생각하다가, 그녀는 핑 도는 느낌이 든다.
손을 뻗어 전자레인지 사이에 놓인 커터 칼을 더듬는다. 칼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어느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 박스를 힘껏 집어던졌다. 그것은 물을 흩뿌리며 회전하다가, 벽에 부딪힌 후 불규칙하게 떨어졌다. 작은 물방울이 그녀의 얼굴과 몸에 산발적으로 튀었다.
원인을 알 수도 없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크게 어긋나 있어... 후회하지 않는다고, 아니야 난 후회해. 정말 후회가 돼.' 감당할 수 없이 밀려오는 존재의 허기와 우울감은 그녀를 휘감는다. 무심결에 다시 커터칼을 손에 쥔다.
새하얀 블라우스 사이로 붉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자상은 이런 자아의 짐을 내던지고, 자신으로부터, 파괴적인 내적 긴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가망 없는 시도다. 이 새로운 고통의 사진들은 셀카의 피 흐르는 뒷면이다.' -한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