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자의 아비투스
한병철 읽기(12), 시스템의 폭력, 10월 14일 단상
'오늘날 사람들은 같은 것의 과다, 긍정성의 과잉에 점점 더 심리적 해제 반응으로 반응한다. 그리하여 신경성 식욕 항진증이 생겨난다.' -한병철
그의 세리머니
그는 서둘러 치킨 상자를 연다. 손을 씻지도 않고 닭 날개를 집었다. 연속해서 네 개째 씹으며 좋아하는 날개만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붉은 소스가 듬뿍 묻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입안 가득 우물거리며 그는 냉장고로 달려간다. 손목을 꺾은 채 힘들게 문을 열고 맥주부터 꺼낸다. 기름진 손가락에 그만, 캔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순간 짜증이 밀려 올라온다. '아니야 지금 기분 망치면 나만 손해야' 그는 다 씹지도 않은 고기를 꿀꺽 삼켰다.
먹고 있어도 허기진 느낌이 든다. 늦은 저녁, 배달음식으로 마무리하는 하루 일과는 마음먹은 대로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그는 테이블 위의 맥주 뚜껑을 집었다. 손가락에 묻은 소스 때문에 계속 미끌린다. 캔 따개가 두 번째 헛돌자 분노가 일렁인다. 감정이 잘 컨트롤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 어떤 때는 쓰나미처럼 출렁되는 터에 감당이 안된 적도 있다. 이러다가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만 매번 생각한 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인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할 뿐이다.
물론 그도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는지, 막연하게 치밀어 오르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반갑지도 않은 손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고, 최근에는 더 잦다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늦은 저녁만큼은 잠시 치워둘 수 있다. 배달음식을 제물로 세상과 그는 화해의 의식을 치를 수 있기에.
그는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 슬쩍 원을 그리며 어루만진다. '지금은 축배의 시간이니까.' 기분이 나아진 느낌이 든다. 캔 뚜껑이 열리자 흐르는 거품에 무의식적으로 혀를 내민다. 고개가 활짝 젖히고 500미리의 절반 이상을 연거푸 들이켠다. "캬~" 목젖 사이로 비명 같은 신음소리를 지른다. 그의 손은 이미 닭날개를 집어 들었다. 한 번에 훌쩍 털어 넣고 입 안에서 발골을 마친다. 하얀 비닐봉지 바닥이 씹고 남긴 뼛조각으로 채워지자, 속은 좀 달래진 느낌이다. 반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지를 열고 치킨무를 우적우적 씹는다.
허기진 존재
그는 물티슈로 손을 닦고 핸드폰을 열었다. 첫 화면 제일 위에 붉은색 앱을 클릭한다. 위로 계속 검지 손가락을 놀리자 썸네일 몇 개가 빠르게 지나간다. 순간 그의 손이 화면을 멈춘다. 도마에 가득 놓인 미더덕을 한입 넣으려는 '광대'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오늘은 이거지' 핸드폰을 가로로 놓고, 2리터 생수병에 기대 고정시킨다. 다행히 라이브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광대가 생미더덕에 초장을 듬뿍 찍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한 입 가득 우적우적 씹는 모습에 그는 다시 허기진 느낌이 든다.
잠시 창을 내리고 배달앱을 연다. 스크롤을 하던 중 망설인다. 이번 달 카드값 걱정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결재가 된 화면을 멍하니 쳐다본다.
어느새 화면은 바뀌어 있다. 광대는 초장이 묻은 손을 핥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5병의 소주 중 한 병을 든다. 아직 개봉 전이라는 것을 확인시킨 뒤, 두 손을 반대로 획 돌리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린다. ASMR을 강조하기 위해 광대는 마이크 가까이 잔을 가져간다. 투명한 글라스에 가득 담긴 소주를 마시기 전 광대는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세리머니를 한 뒤 소주잔을 카메라로 가져가며 '짠'하고 말한다. 그는 턱을 쭉 빼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광대의 목젖이 앞 뒤로 섹시하게 오간다. 어느새 잔은 완전히 비워져 있다. 남다른 청량감에 그는 야릇한 쾌감마저 느낀다.
햄지, 문복희, 쯔양, 푸메, 야식이 등 그를 거쳐간 영상은 이제 식상할 뿐이다. 물론 다른 먹방 유튜버와 비교했을 때, 화질이나 마이크 성능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몇 번 걸친 기성품은 아직 새것 같아도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로운 날 것이 왜 좋은 지 설명할 수 없는데 그는 원한다.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고 본다. 광대가 다시 짠하고 유리잔을 화면으로 가져갈 때, 그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맥주캔을 마주친다. 그가 씹는 미더덕과 내가 씹는 양념치킨이 입안에서 섞인다. 하루 중 유일하게 일치되는 느낌이 든다.
'회생자는 동시에 시스템의 공모자다. 희생자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가해자와 구별되지 않는다. 폭력은 자기 착취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일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자기 관계적 성격을 띤다.' -한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