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 훈련편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번째 기술은 책임지는 것이다. (P. 46-63)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삶의 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다. 이런 얘기는 말 같지도 않은 뻔한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그것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야"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해결해 주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오로지 "이것은 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도 내게 달렸다"라고 말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회피하거나 과도하게 책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노이로제와 성격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이 두 가지 병적 장애는 모두 책임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너무 책임을 지려고 하고, 성격 장애인 사람들은 응당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신경증 환자는 세상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 자기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격 장애의 사람들은 세상과 대결할 때 세상이 잘못됐다고 치부해 버린다.
신경증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열등한 이미지로 자각하면서, 자신이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언어들을 자주 사용한다.
"내가 꼭 해야 했는데",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데", "내가 해서는 안 되었는데"
반면에 성격 장애인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행동이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해", "나는 꼭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신경증 환자들은 성격 장애 환자들보다 치료가 쉽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그 이유는 신경증 환자들은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격 장애자는 문제의 근본 원인보다는 세상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자신을 분석, 진단할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도 대부분 어느 정도의 신경증이나 성격 장애는 피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하도록 권유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이며, 또 무엇이 우리 책임 밖의 것인가를 분간하는 문제가 인간 실존의 가장 큰 문제인데, 그것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어디에 둘 것인지 평가하고 또 재평가해야만 한다. 이 평가와 재평가를 제대로 성실하게 하고자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각각의 과정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할 때 이를 지적해 줄 수도 있고,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재확인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이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부모가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시간을 내 귀찮더라도 아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아이들의 성장을 북돋워 주기 위해 부모로서 적절한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는 것이다.
저자는 신경증 환자인 부모보다 성격 장애를 가진 부모가 자식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자식을 잔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경증 환자는 자기 자신을 못살게 굴고, 성격 장애자는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못살게 군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성격 장애가 신경증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받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책임지는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백만, 천만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자유로부터 도피를 시도한다.
부모와의 관계
우리가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만큼 부모는 우리에게 지나친 지배권을 갖게 된다. 사실 부모는 우리를 잘 기를 책임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 부모가 억압적인 태도로 아이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자발성과 선택 능력을 제대로 기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제한적이지만 건강한 성인에게는 무한대로 주어지기 때문에 선택 능력의 미숙은 큰 문제가 된다.
저자는 성격 장애로 정신과 의사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는 경우는 증세가 심한 경우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증과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동감이 된다. 나 자신도 때때로 당면한 삶의 문제들을 미루고 회피하는 경향을 종종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이 책에서 자세히 밝힌 신경증과 성격 장애에 대한 원인들은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도와준다.
"네가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네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 M. 스캇 펙
예전에 홈리스 한분과 몇 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점심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완전히 깨어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홈리스가 된 것이 그가 정신병이 있거나 약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삶의 문제 때문에 자신을 파괴시켜 홈리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여동생의 배신과 이혼은 그 자신이 감당하기 너무 힘든 일이었고, 그 모두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에 괴로워 했다. 게다가 그의 주변 인물들 모두가 그의 책임이라고 비난했었다. 그래서 그는 너무 괴로워서 노숙하게 되었고, 그러다 알코올과 마약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와 나는 똑같은 사람이구나. 나와 다르지 않구나. 한 발짝 삐끗하면 나도 나 자신을 파괴시킬 수 있겠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그가 예전에 자주 갔었던 브런치 음식점에 가서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음식을 함께 하면서 과거의 행복했던 감정을 회상하도록 노력했던 기억이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이 난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만들 때 물과 철교의 높이가 67m라서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러자 당국에서 인명사고를 없애고자 안전 그물망을 설치하면서부터 더이상 떨어지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물에 빠진 것은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두려움과 한번 삐끗하면 되돌릴 수 없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큰 두려움을 야기시켰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일을 할 때마다 몸이 경직되고, 평소대로 일을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모두 신경증, 성격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실체가 없는 "정상인"이라는 단어에 사로 잡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조그만 연약함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금문교의 안전 그물망처럼 현재 여러 가지 삶의 문제와 고통으로 인해 신경증과 성격 장애를 겪어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비난보단 정신적, 심리적 안전 그물망을 서로 만들어 주면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질문들을 생각해 보았다.
질문 1: 책임과 관련해서 발생했던 일들 중 나에게 정신적, 물질적, 관계적 피해가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자.
질문 2: 나는 왜 책임을 회피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고민해 보자.
질문 3: 과도하게 책임을 지고 있었던 문제가 있었는지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질문 4: 현재 당면한 문제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이 요구되는지, 이 책임에 따른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자.
질문 5: 위의 문제들을 해결할 때 발생되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기술해 보고, 나 자신을 성장하고 발전하고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