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상처 받지 않는 삶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느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 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 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상처들을 잘 다룰 것인가에 달려있다.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 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나만의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갈등 때문에 상처 받고, 힘들고, 때론 너무 지쳐서 사람을 피하기도 한다. 심하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우리는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의미는 똑같지 않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겪어온 환경과 사물에 대한 생각, 교육,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함께 얽혀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잡채'를 누군가가 말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잡채일 수도 있고, 나 같은 경우 잡채를 좋아했지만 체하고 나서 잡채를 떠올리면 체했던 생각이 나서 처다도 보고 싶지 않은 음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화 속에서 오고 가는 단어들과 문장들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고, 그 해석도 다를 수 있다.
서로가 다름을 통해 오는 유익은 뭘까? 나 자신을 미추는 거울처럼 상대방을 통해 나 자신과 상대를 더욱더 알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서로 다른 시각과 해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해석을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생각이 확장되고,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돌아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다른 해석에 의해 나의 생각이 풍성해질 수 있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 들어갔을 때, 상대방의 의도는 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등 꼬리를 물고 퍼져가는 부정적인 생각, 이로 인한 불안감, 급격히 떨어지는 자존감, 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나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삶의 주도권 찾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처로부터 회복하는데 있어 한 가지 믿음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 것은 "나는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 것을 믿을 때 관계에서 오는 상처들, 예기치 못한 상황들,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 나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들의 고통을 나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으로 낮춘다. 상처를 회복하는데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그 고통이 나를 집어삼켜서 내가 탈출할 수 없다는 생각의 덫이 아닐까? 따라서 이 믿음은 내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혹은 상처들과 상황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상처를 받을 때 이 믿음을 늘 되새긴다.
상처 받았을 때 가장 힘든 일이 바로 "현실을 직시하기"일 수도 있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들, 아픔들, 나의 실수들, 창피한 일들, 사람들에게 언어적 폭력을 당했을 때 등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가장 쉬운 행동은 회피이다. 회피 혹은 도피는 진통제처럼 괴로운 상황을 잠시 잊게 만들지만, 회피만 계속할 경우, 그 상처들이 곪아서 내가 사람들을 못 믿게 만들고, 과도하게 조심하게 만들고, 소심하게 만들고, 침묵하게 만들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두려워서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엉망으로 만들고, 더욱 안 좋은 것은 관계의 악순환을 만들어서 더욱 자존감을 낮추게 되고, 나중엔 우울증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줄 수 있다.
힘들지만 현실을 직시하도록 노력해 보자.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적어보자.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말해서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구나, 그 사람이 내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질러서 너무 화가 나고 폭력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아팠구나 등,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나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보고,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해 보자.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단어', '문장', '행동'이 나의 특정한 감정(불안감, 두려움, 무시 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상처를 직면하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고, 성장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다시 그 두려운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나를 힘들게 했던 단어, 문장, 표정, 행동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구체적인 나의 감정을 적어보자.
현실을 직시할 때 상황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상황을 확대 해석해서 과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낼 경우, 내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슬퍼할 때 슬퍼하자.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호감스런 태도에서 갑자기 공격스런 태도로 바꾸었거나, 혹은 가족으로부터의 상처되는 말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나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말을 들었을 때 등 이 모두는 너무 슬픈 일이다. 상대로부터 비난받고, 거절당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받는다면 힘이 빠지고, 불안해지고,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받아들이자. 슬퍼하자. 애써 모른 체 이러한 감정들을 덮어두거나 지나가버린다면 나중에는 이러한 감정들이 쌓여서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수영장에서의 구명조끼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날카로운 칼처럼 작용할 수가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퍼하되, 상대방의 말이 나의 존재에 대한 평가와 판단의 말이라면 단호히 거부하자. 그 누구도 나의 존재에 대해 판단할 자격은 없다. 심지어 부모라도!! 그것은 나에 대한 폭력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판단이나 부정적인 평가를 단호히 거부한다.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문장이, 표정이, 행동이 계속 머물 때, 나는 계속 그것은 거짓이며, 그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고 계속 되뇌인다. 나의 존재의 의미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이다라며 다짐한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이라면 내가 받아들이고 수정하면 되지만, 나의 존재에 대한 판단의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나 자신에게 다시 폭력을 가하는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슬퍼해도 괜찮아. 이런 감정들도 내 감정인 걸. 괜찮아..."
내 삶의 주도권 회복은 나의 자존감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상처로부터 치명상을 입지 않고, 회복을 빨리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과 직결된다. 자존감은 나 자신의 효용성과 존재의 의미의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존재의 의미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라는 믿음이고, 이는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학교와 사회에서 맺은 관계로부터 오는 나 자신에 대한 칭찬, 호감, 격려, 사랑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랑 받음은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며, 상대방의 실수 혹은 미숙함으로 인해 만들어 내는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나 상처를 포용하며 그것을 뛰어넘어 그 사람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는 회피 이외의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상처를 회복하고, 관계도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상처 받았을 때, 나를 사랑해주자. 각자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핵심은 나를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 여유 있는 커피 한잔,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 친구들과의 수다, 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의 대화, 나를 행복하게 했던 과거의 기억 떠올리기 등 자신만의 회복을 위한 공간과 사람을 준비해 두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일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신영복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만큼의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그만 행복 혹은 기쁨이 그만큼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어떤 거대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닌 사소하지만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쁨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다시 나의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케 만들면, 상황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혹은 해석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또는 해석으로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해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회복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안 통할 때가 있다. 이러한 방법은 내가 삶에 대한 애착이 있고,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한데, 나의 자존감이 너무 낮아졌을 때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는 경우, 상처로 인해 잠식당하게 된다. 마치 바다에서 수영을 할 줄 알아도 힘이 빠져서 바다에 빠져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나 자신을 파괴시킬 수가 있다. 이 때는 누군가가 정말 필요하다. 누군가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고 받아주는 사람,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만약 주변에 없다면,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 상담 등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혹은 종교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자존감이 회복되었다면, 나를 상처 입게 만들었던 상대방과의 대화를 시작하자. 모든 관계에서 이러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소중한 관계라고 생각될 경우에만 대화를 시작하자. 상대로부터 받았던 상처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과 감정을 비폭력적으로 말해보자. I-Message를 사용해서 표현해 보자.
"당신이 행동, 말, 단어로 나에게 ~~(구체적인 행동) 했기 때문에 나는 감정(존중하지 않는다, 무시한다, 케어하지 않는다, 등)을 느꼈다. 앞으로 당신이 나에게 그런 행동이나 단어, 문장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리처드, 당신이 나에게 F-words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나는 당신이 나 앞에서 F-words를 사용할 때마다 불편하다. 앞으로 당신이 나에게 말할 때 F-words를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실제로 나는 나의 슈퍼바이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슈퍼바이저는 나에게 미안하다면서 사과했다. 그 이후로 그는 내 앞에서 F-words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행동을 바꾸었을 때,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단계에서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과 다시 대화한다는 것은 두렵고, 또다시 그 상황이 재발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대면해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믿음과 내 삶의 행복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도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따라서 걱정되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대면해 보자. 실제로 많은 경우, 대면해서 말했을 때, 상대방이 흔쾌히 수용하며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얻는 기쁨은 참 크다. 이러한 기쁨을 반복적으로 맛보게 될 경우, 상처의 대한 회복성을 증대시키며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해소시킬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했을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가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이럴 때, 다시 I-message를 사용해서 나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자. 이렇게 솔직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아닌, 이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하는 것임을 표현해 보자.
"내가 이렇게 너에게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말하는 것은, 너와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기 때문이야. 그리고 네가 나에게 소중한 것처럼 나도 소중해. 네가 나를 존중해 준다면 내가 행복할 것 같아."
만약 내가 관계 회복에 충실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수긍하자.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려가면서 관계를 맺는 건 나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으니깐 내려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