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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Jan 25. 2022

#2 기다림

무슨 암일까?

2주는 길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네이버와 구글을 검색했다. 전이성 척추종양이 무엇인지, 블로그 글을 찾아보고 유튜브를 검색하고 관련 논문을 찾아보았다. 검색 결과는 아주 좋지 않았다.


2~3%의 확률이 나의 것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되지 않았다. 암이 원격 전이가 시작되는 시점은 원발암의 병기가 4기에 도달했을 때부터이기 때문에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가 아닌 삶의 질을 올리는 치료를 한다고 나와있었다. 한마디로 완치가 불가능하니 죽을 때까지 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치료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원발암이 무슨 암이냐에 따라 내 기대수명이 달려있었다.


사실 몇 년 전 평소에 너무 피곤해서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간수치가 안 좋게 나왔었다. 약을 한 달 정도 먹었더니 다시 수치가 내려가서 잊고 있었는데... 혹시나 간암이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간암 4기?


이때는 여자 친구가 내 집에 와있었는데, 둘이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 여친은 내가 불쌍하다고 울고, 그런 여친을 보면서 나도 내가 불쌍해서 울고.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울고, 잠자면서도 울었다. 이 상황 자체가 그냥 꿈만 같았다. 아주 지독한 악몽. 꿈에서 깨길 바라지만 도무지 깨질 않는 악몽.


이런 마음으로 2주를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의사는 다음 주에 보자고 했는데, 일정이 2주 뒤로 잡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정을 당겨보려고 병원을 무작정 찾아갔다. 예약을 담당하는 간호사를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이 다음 주에 결과 보자고 하셨는데, 일정이 다다음주로 잡혀서요. 당길 수는 없나요?"

"그래요?"

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컴퓨터에 내 이름을 입력하더니 자그맣게 '아' 그러더니

"다음 주로 일정 잡아드렸어요"


뭐야? 이렇게 쉬운 거였어? 지난주에 간호사가 일정을 잡을 때 정신이 없어 보였는데, 약간의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기분 전환을 위해 인천에 사는 놀우회 친구에게 연락을 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고, 친구의 부인을 안 지도 벌써 20년이 된 사이. 여친과 함께 인천을 찾아가 조개구이를 먹었다. 아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친한 친구랑 웃고 떠드는 순간만은 암이라는 단어를 잊을 수 있었다.


병원 가기 전 날에는 긴장이 되어 한숨도 자지 못 했다. 회사를 뺀 여친과 함께 병원을 갔다. 대기실에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이었는데 드물게 나처럼 젊은 사람들도 보였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화가 난 어르신이 애먼 간호사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다들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병원 특유의 풍경. 이 풍경에 점점 익숙해지겠지. 의자 옆에는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게 나의 미래일까? 안 좋은 생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커져가고 있었다.


신경외과 의사는 펫시티를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몸 전체를 찍은 CT 사진에는 두 군데가 환하게 밝혀져있었다. 목 부근과 요추 부분.

"갑상선암에서 전이된 것 같습니다"


'갑상선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살았다'였다.


"이거 치료하면 나을 수 있나요?"

"그럼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갑상선 쪽 진료 연결해드릴게요"


다른 암을 걱정하고 있던 터라, 갑상선암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대충 착한 암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갑상선암도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목 아랫부분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참 무심하기도 하지. 이렇게 부어있었는데도 몰랐다니. 여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갑상선 쪽 진료는 바로 당일 오후에 잡혔다. 이제는 가족에게 상황을 전달해야 될 것 같았다. 지하주차장에서 고향 광주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부지 어디세요?"

"어, 출근하고 있다. 왜?"

아버지에게 차분히 설명을 했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종양을 발견했고, 추가 검사를 했는데 갑상선암이 원인이었다고. 지금은 병원에서 갑상선 선생님 진료 기다리고 있다고. 놀란 아버지는 출근하는 걸 당장 취소하고, 어머니와 KTX를 타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렇게 여친과 우리 부모님은 용산역에서 첫 대면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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