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 빠져도 괜찮아! 굴러만 가면 어디든 가겠지!
골프를 치다 보면 스코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이 참 많다. 예를 들어, 내가 한껏 잘 나가던 날엔 드디어 90대를 찍었다고 속으로 기뻐하며 스스로를 격려하는데, 며칠 후 다시 라운딩을 나가 보면 현실은 냉혹하게도 100대를 치고 있다.
내 공이 벙커에 빠지고 또 빠지고, “이건 골프가 아니라, 도대체 모래사장 청소를 하는 기분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도 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쩌다 이 고생을 자처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문득 IMF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도 인생의 그래프가 골프 스코어처럼 오르락내리락하던 시절이었다.
IMF 시절엔, 나름대로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사업이 잘 될 줄 알았고,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한 외환 위기가 닥치며 하루아침에 상황이 달라졌다. 마치 골프장에서 “오늘은 좀 된다!” 싶었던 스윙이 공허한 벙커로 직행하는 그 순간과 닮은 기분이랄까.
그땐 마음이 참 내려앉았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너무 내 예상과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다. 내 노력이나 계획이 뜻대로 안 되는 걸 온몸으로 느꼈던 그 시절이 지금의 골프 스코어처럼 아찔하게 떠오른다.
골프장에서도 비슷하다. 오늘은 90대를 치며 자신감이 살짝 생기나 싶어도, 다음 주엔 다시 공이 물속으로 날아가며 100대를 치고 나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공을 주워 들고 다시 티샷을 날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어이없이 잘 맞아 멀리 날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뻘짓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음이 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한번은 초반 세 홀을 멋지게 시작했는데, “오늘은 90대 고지에 오를 수 있겠다”며 설레던 찰나, 갑자기 연속으로 공이 벙커에 빠져 아홉 번 만에 그 벙커에서 나왔던 순간이다. 온몸에 땀을 흘리고, 주변에서 친구들은 내 벙커 탈출을 응원하며 킬킬대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엔 스코어도 인생도 다 내려놓고 그저 같이 웃게 되더라. 이게 바로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IMF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 기복을 웃으며 넘기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실패가 있었기에, 이제는 벙커에 몇 번 빠져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배운 것 같다.
내가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 그 시절 덕분에, 지금도 내 점수가 100을 넘어가면 그냥 ‘그래, 인생이 원래 이렇지’ 하며 웃게 되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친구가 이런 말을 해주더라. “골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오늘의 최악을 잊고 최고의 샷 하나만 기억하는 거야.” 그 말이 참 와닿았다.
내 인생에도 늘 기복이 있었지만, 힘들었던 순간보단 반짝였던 한 순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이 오르내리는 골프와 인생에서 얻은 유쾌한 교훈이다.
“인생이란 스코어는 오르락내리락한다. 중요한 건 그날의 웃음을 놓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