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 빠져도 괜찮아! 굴러만 가면 어디든 가겠지!
골프 모임에는 ‘점수 마법사’로 불리는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는 매번 라운딩을 나갈 때마다 신기한 능력을 발휘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홀, 한 홀의 점수를 솔직하게 기록하는데, 이 친구만큼은 홀마다 점수를 계산할 때마다 묘하게 숫자가 모호해진다.
처음엔 다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지만, 라운딩이 거듭될수록 그의 기록에 점점 더 의문 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이 친구와 라운딩을 나가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파4 홀에서 네 번 쳐서 홀에 넣었다고 주장하는데, 분명히 나와 다른 친구가 써드 샷이 어긋나면서 해저드로 빠진 걸 보고도 “아, 그건 세 번 친 걸로 칠게”라며 특유의 너스레로 점수를 조정한다.
우리는 웃으며 “그래, 뭐 네 점수니까 네 마음대로 해”라고 넘기지만, 이 모든 게 거듭될 때마다 그의 스코어는 마법처럼 점점 낮아진다.
골프는 사실 골프 실력이 일천한 내게는 점수보다는 함께 걷고 즐기는 경험이 더 큰 의미를 준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점수를 속이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자면 속이 좀 답답해진다.
한 번은 내가 못 참고 “야, 네가 자꾸 점수를 그렇게 계산하면 우리도 헷갈리잖아”라고 웃으며 말해봤다. 그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아니야, 내가 요즘 머리가 좀 복잡해서 그런가 봐”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다음 홀에서도 그 친구는 여전히 점수를 묘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이 친구가 이렇게 자기 점수를 속이기 시작한 이유가 뭘까? 나름대로 고민해 본 결과, 어쩌면 그에게 골프는 자존심의 문제이거나, 좋은 점수를 내고 싶은 바람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실수할 때마다 점수를 슬쩍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골프 친구는 스코어가 얼마가 나오든 그대로 인정하고 웃어넘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즘엔 이 친구의 점수 계산을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점수를 속일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래,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걸로 됐다." 하고 생각하며 한 걸음 물러선다. 점수는 누구나 다르게 기록할 수 있지만, 그 사람과 나눈 진짜 순간은 속일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한 번은 농담 삼아 그에게 말했다. “야, 네 점수는 내일이 되면 또 바뀌겠네? 너도 모르게 스코어가 자꾸 수정되잖아!” 그 말에 그 친구도 웃으며 “어쩔 수 없지 뭐, 나만의 스코어 방식이랄까!” 하고 장난스럽게 답했다.
결국 이 친구와의 라운딩을 통해 깨닫게 된 건, 골프에서는 스코어보다 더 중요한 게 서로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다. 골프는 때로는 실수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불안정한 순간들이 가득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하면서 나오는 솔직함과 신뢰가 진짜 재미를 만들어 준다. 언젠가는 이 친구도 자신의 스코어보다 우리와 함께한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결과는 순간이지만, 함께 쌓은 신뢰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