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는 맥심을 더 좋아하니까

커피 마시는 루틴(33)

by 장수댁 고양이

에티오피아 코케 허니 내추럴 G1. 에티오피아에서 수입한 꿀맛나는 원두일까. 알고 보면 별 거 없지만 처음엔 그 이름이 그렇게 낯설더라. FBI를 풀어 쓴 게 미국 연방 수사국라는 걸 알았을 때 같은 기분.


얼마 전 1kg을 샀고 20g씩 내려 마시고 있다. 수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직접 갈고, 주둥이가 기다란 주전자에 93도로 끓인 물을 담는다.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얹고 소복하게 쌓인 원두 가루를 부어준다.


그리곤 호흡을 멈춘다. 원두를 적셔주기 위해.


60ml를 원을 그리며 물을 부어주고, 45초 있다가 다시 반복한다. 300ml를 채울 때까지.


볶은 지 오래되지 않은 원두가 뿜어내는 가스가 몽글몽글한 거품이 돼 차오른다. 10년 묵은 간장과 산뜻하게 볶은 견과류 그 어딘가에 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처음에는 차오르던 거품이 서서히 가라앉고 나중에는 잔잔하게 물만 내려간다.


그걸 지켜본다. 숨도 최대한 조용히 천천히 쉬면서 물이 커피가루를 지나 커피가 되는 과정을. 물에 젖은 커피 가루 위로 피어나는 일렁임을 느끼며. 3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리곤 장수에게 가져간다. 빛깔이 선명하게 보이는 묵직한 유리잔에 따라. 잘 되는 식당집 막내 딸인 장수는 장모님의 솜씨 대신 미각과 후각을 물려 받았다.


장수는 말한다. “우와, 이번엔 정말 잘 내렸네. 입에서 꽃향기가 팡팡 튄다. 혀 뒷쪽에서 묵직하게 착 감기네.”


속으로 생각한다.


‘뻥 치시네.’


장수는 한 모금 주고 나머지는 내 몫이다. 장수는 맥심을 더 좋아하니까.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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